내 얼굴로 환자의 주먹을 때린 날

by 힐링요트

병동의 폭풍

병원 복도에 울려 퍼지는 고함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 전공의 1년차인 나는 떠밀리듯 병동으로 나섰다. 정신과 전공의들이 상주하는 의국이 병동 안에 있어서, 병동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역시 그분이었다.

왜소하고 깡마른 체형의 40대 김 씨. 조울증으로 조증 상태 때문에 입원한 환자였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집에서는 목소리 한 번 높여본 적 없는 순한 사람이었다. 직장에서도 자기주장을 못 하고 양보만 해서 항상 손해를 보는 것이 부인에게도 늘 불만이었다. 서운함도 불평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그가 조증의 거대한 파도에 휩싸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먼저 말을 걸어오고 목소리도 또렷해졌다. 평소엔 미소만 짓던 입술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자기주장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단어들이 서로를 밀치며 한꺼번에 쏟아져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잠도 자지 않고 다니며 자선단체에 수십만 원을 기부하고, 가족과 이웃들과의 다툼도 잦았다. 층간소음으로 위층 주민과 다투고 나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자, 가족들은 큰 사고가 날까 두려워 입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병원에 와서도 이런 행동은 전혀 잦아들지 않았다. 주변 환자들과 끊임없는 시비와 다툼이 있어서 병실에서도 환자 간 다툼이 생길까 늘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지쳐가는 일상

하루에도 몇 번씩 김 씨는 주치의인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무 문제없어요. 빨리 나가서 큰 계약을 해야 하는데, 만약 큰 손해가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빨리 퇴원시켜 주세요."


"당신은 레지던트 잖아. 내가 마루타예요?"


전공의를 마치 의사도 아닌 것처럼 대하는 말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퇴원 요구와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사이에서 시달리며,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가며, 밤중에는 잠도 안 자고 병실을 돌아다니는 그 때문에 당직 근무 때는 몇 번씩 불려 나와 상담 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비현실적인 요구에 시달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날도 김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며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주제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웃음과 흥분이 뒤섞여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당혹과 불안이 동시에 깃들었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댐이 갑자기 터져버린 듯, 그는 그동안 삼켜왔던 모든것들을 한 번에 쏟아내고 있었다.

흥분이 고조되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그가 외쳤다.


"왜 나를 여기 가둬둬! 나는 아픈 게 아니라고!"


그의 외침이 복도 끝까지 메아리쳤다. 다른 환자들이 하나둘 병실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숨어버렸다. 병동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깊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

어리석은 결정

모든 사람의 시선이 주치의인 나에게 향했다. 나의 잘못이라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수간호사 선생님이 "강박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권유 형식의 힌트를 주었다. 경험 많은 수간호사가 1년 차 의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오늘은 보호사 선생님들이 부족했다. 응급상황이었다.

마치 내 잘못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내 환자를 강박하는데 내가 직접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는 눈앞의 위험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빨리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주치의가 자기 환자를 직접 강박하는 것이 관계 형성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다.

그 순간

강박이 시작되었다. 김 씨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조증 상태의 환자가 보여주는 초인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안간힘을 썼다.


"놓아줘요! 놓으라니까!"


그의 절규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보호사 한 분이 그의 오른팔을 잡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손이 미끄러졌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무언가 날아와서 내 얼굴을 강타했다. 안경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세상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픔보다는 놀라움이 먼저 왔다. 그리고 곧이어 밀려온 것은 민망함이었다. 주변 직원들의 시선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뺨이 얼얼했지만, 마음이 더 아팠다.

김 씨는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도 순간 무언가가 번쩍였다. 놀람인지, 후회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서운함의 무게

그날 밤, 휘어진 안경테를 억지로 맞추며 내 마음속에는 서운한 감정이 검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동안 잠도 못 자고 시달리면서도 '나는 당신을 치료하려고 했는데...' 돌아온 것은 주먹질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니 원망스러웠다. 높았던 의사로서의 자존감도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내 감정에 가려서 김 씨가 조증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주치의이니 그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환자를 치료해야 했으니까.

역전된 고통

며칠 후, 김 씨의 조증 증상이 가라앉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바다처럼 그의 마음도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제가 선생님을..."


김 씨는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죄책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조증 때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살아나면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내가 아무리 다독여도 그의 자책은 깊어만 갔다. 급기야 그는 식사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우울증으로 급격히 빠져들고 있었다.


맞은 건 나인데, 정작 타격을 받은 건 김 씨였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심하게.

실격 판정

의국 회의를 요청했다. 환자의 죄책감이 더해지면 우울증도 훨씬 더 심해지고 자살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우려에 주치의를 바꾸기로 했다.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서 강판당하는 기분이었다. 환자를 위해 주치의를 바꿔야 하는 상황. 나는 실격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맞은 게 아니었다. 내 얼굴로 김 씨의 주먹을 때린 것이었다. 김 씨의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커다란 상처를 더 해준 꼴이었다.


정신과에서는 이런 기이한 일도 일어난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치료 행위가 본의 아니게 가해가 되는 난감한 상황.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치유하고 상처 입히며 성장해 갔다.

성장의 의미

2년이 흘렀다. 또 다른 조증 환자가 입원했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젊고, 더 격렬했다. 의국 출입문이 깨질 것 같은 노크 소리에 나가보니 그 환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고 호흡이 거칠었다.


"여기 있기 너무 답답하니 병동 밖에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 보내주세요."


"그건 곤란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입원 중이시고..."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의 이단 옆차기가 내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눈앞에 시커멓고 커다란 신발이 확 나타났다.

가까스로 몸을 피해 맞지는 않았고, 소란에 보호사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환자를 제지했다. 그 순간 1년 차 때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만일 또 맞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안도의 다행감으로 온몸에 전율이 스쳤다.


'이번에는 얼굴로 발바닥을 때릴 뻔했네.'


맹세컨대 원망이나 서운함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발로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1년 차 전공의 때는 서운함을 느꼈는데 3년 차 때는 엄청난 다행감으로 변했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디쓴 성장통

인턴이나 전공의 초년 차에는 '3신이 들었다'고 한다. 잠자는 데 잠 신, 먹는 데 걸신, 환자 보는 데는 병신. 전공의 시절의 좌충우돌 속에서 맛보는 고통과 연민, 상처와 보람, 피곤함과 자존감의 상처 등이 섞인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알약을 무수히 삼키면서 조금씩 정신과 의사로 성장해 갔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한 조증이나 조현병 환자분들과도 그들의 감정을 전혀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유연하게 잘 통제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휘어진 안경테,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김 씨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의 혼란과 깨달음을 통해 성장해 왔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정신과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맞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가 된다는 것을.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은 아닐까?


정신과 병동의 하얀 복도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 때로는 치유하려는 마음이 상처가 되고, 때로는 상처가 치유의 시작이 된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의사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 모든 역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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