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과 죽음

by 힐링요트



자살과 죽음은 동의어일까? 아니면 최소한 같은 부류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반댓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삶의 다른 말이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좌절되어서 자기를 죽이는 것이지, 죽음에 대한 욕구는 대부분 아니었다.

그렇다면 죽음과 자살은 어떤 관계일까? 자살하는 사람은 정말 죽음을 원했을까?


나는 까치발로 겨우 손이 닿을 높이의 벽에 굵은 못을 박아놓고 살아낸 적이 있었다.

의과대학 1학년. 가장 유급을 많이 하는 위기의 시간 동안 교과서보다 시집을 더 많이 읽었다. 그때 쓴 일기장에는 수많은 궁금증 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분명한 것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해야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험 때면 모나미 볼펜 한 자루에 담긴 잉크를 하루에 다 소비하면서 15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그저 정해진 길만 보고 갔다.


짧은 방학이면 짐을 싸서 전국을 방랑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나에게는 마음이 쉴 공간이 없었다. 언제나 마음이 허전했다.

식빵 한 봉지로 하루를 살아도 배가 아니고 마음이 고팠다. 마음에 생기는 허기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공간으로 느껴져 심한 소외감을 느꼈다. 마치 유리 벽 너머로 행복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곳.


가족 사랑을 여자친구에게서 얻으려고 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내 마음은 그 사랑을 구걸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도와줄 이유도 몰랐다.

혼자 있으면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깊은 구멍에 무엇을 넣어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의 허기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었다.

바람이 세차게 들어왔다. 몸을 차 밖으로 던지려는 순간, 갑자기 환자들이 떠올랐다. 자살 상담을 했던 환자였다.


"선생님, 정말 죽고 싶어요.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해요?"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살아야 할 이유는 많아요. 힘든 시간은 지나갈 거예요."

순간 이 죽음은 나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라 여러 명을 데려가는 죽음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상담은 무엇이었나. 나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환자들에게 조언했다니. 위선의 가면을 벗은 내 초라한 모습에 그날 한없이 울었다.

돌이켜보니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삶이 무거워 견디기 힘들었다. 좌절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심각한 결핍이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만큼 외로웠고 그만큼 좌절로 돌아왔다.


사실 죽음은 너무도 두려웠다. 때로는 이 좌절감들이 죽음의 두려움을 위협할 수준에 다다르면 자살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죽음에 대한 욕구가 아니었다.


고통을 멈추고 싶었을 뿐이다.

외로움을 끝내고 싶었을 뿐이다.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좌절은 우리를 좌절시키지 않는다. 좌절감이 우리를 좌절시킨다.

좌절은 오히려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준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인식은 우리를 좌절감에서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


가수 김창완 씨의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이제야 보이네 아버지 자리 떠난 지 7년

이제야 보이네 어머니 자리 누우신 지 3년


그렇다. 이제야 보인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이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살은 삶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다. 다만 그 방법을 잘못 찾고 있을 뿐이다.

마치 목이 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갈증을 해결하려는 욕구는 정당하지만, 방법이 잘못되면 더 큰 갈증만 생긴다.


자살에서 삶으로


자살과 죽음은 정말 반댓말이다.


자살은 삶에 대한 갈망이고, 죽음은 삶에 대한 완성이다.

자살은 고통에서 도망치려는 몸부림이고, 죽음은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평화이다.

자살은 절망의 언어이고, 죽음은 수용의 언어이다.


그 차이를 아는 것. 거기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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