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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설렘병법

프롤로그

by 절대신비

서문을 따로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은 다 서문이자 유언이다. 시작이자 끝이다. 바로 생이다. 이 글들이 어떤 글인지, 어떤 태도로 쓴 것인지를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거의 모든 지면 할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태도. 오로지 삶의 자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 관심사는 철학 계보에 따라 철학자들 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철학자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사상 오롯이 받아내는 것, 즉 철학을 철학하는 것이다. 단지 기존 철학자들 머릿속 탐구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전제다.


또 다른 전제는 여기서 철학이란 인문학 한 분야가 아니라 물리학과 유기적 관계에 있는 최종학문이라는 것. 깨달음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자기 삶의 엑스트라에서 벗어나 주인공으로 도약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도 결을 같이한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진리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철학이다. 깨달음이다. 깨달음과 민주주의는 ― 비로소 제 삶의 주인이 된다는 점에서 서로 정확히 포개진다. 그 놀라운 도道를 이 책을 통해 선언하고자 한다. ‘날마다 나를 혁명하는’ 깨달음과 ‘국민이 시민으로 각성하고 도약하는’ 민주주의는 서로 다르지 않다. ‘이념’이 아니라 ‘시민으로의 상승’이 민주주의이다.


그 어떤 경전이나 철학자에게도 빚지지 않고 자생적 철학 해온 글쓴이 개인으로서도 그것은 큰 깨달음이었다. 깨달음은 ‘나’를 두드려 깨우고 끝내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 이 책은 평소 SNS에 두서없이 쓰던 글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그동안 몇 년씩 은둔의 시간 있기도 했지만 거의 매일 독자들과 실시간 피드백 시간 가지고 있다.



은둔이라고는 하나 실제 은둔을 위한 은둔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 순간 흘러넘치는 사상, 시간 위를 굴러 장대해지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중력으로 인해 별처럼 응축된 사건이었다. 덕분에 ‘별’은 어느 정도 농축되어 걸쭉한 액체 되었다. 때로 동결건조된 고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씩 먹으면 즉시 에너지 주는 초콜릿, 아니라면 그대라는 자동차의 동력, 요즘으로 말하면 배터리, 언젠가는 수소연료전지.



독자들에게는 이 책 리듬이나 템포가 조금 낯설 수도 있다. 독서나 필사가 아닌 집요한 사유가 낳은 글이기에 문체에서나 관점에서나 그 어떤 기시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때로 우주 저 멀리 홀로 나가떨어지는 생경한 카타르시스 체험하게 될 것이다.



과감한 비약 혹은 도약으로 어지럼증 느낄 수도 있다. 한 단어에 기승전결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한 문장에 역설과 반전 응축되어 있기도 하다. 한 단락에 온 우주 구겨져 들어 있기도 하다. 아스라한 쾌감은 보너스. 암담한 현실에 역설적으로 에너지 불끈 차오른다면 성공.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깨달음 전제이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한 줄에 나란히 꿰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 과거가 뛰어놀고 미래가 놀러 온다. 과거는 현재라는 배웅받으며 잘 떠나게 하고 미래는 미리 마중해야 하는 것.


역사에서 패턴 발견할 때 과거는 현재와 담담하게 악수한다. 인류 단위로 사고하며 후대까지 품어 안을 때 미래는 넌지시 다가와 든든한 배경 되어 준다. 선대는 위대한 유산, 후대는 우리 끝끝내 지켜내야 할 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깨동무 만나 노래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를 ‘빛의 철학’이라고 명명했다.



‘빛의 철학’은 말하자면 우주론이다. 지옥 같은 현실 살아내는 우리 태도, 그 늠름한 자세는 우주 법칙과 한 치 오차도 없다. 엔트로피(Entropy) 증가 법칙과 일치한다. 세상 모든 일은 ‘빛의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기 때부터 내 안에서 꼬물꼬물 싹튼 진리 놓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붙들고 왔다는 증명이다. 내 온 생 응축시켜 한 점에 구겨 넣은 것.



노래처럼 리드미컬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곱씹어 보면 볼수록 새로운 지평 열릴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그대와 나 사이에 광대한 우주 흐르고 있지만, 또 가장 먼 곳이 가장 가까운 곳. 우리 이런 방법으로 만날 수 있다. 만남이 곧 진리다.



무대와 배우는 만나야 하고 글과 독자도 만나야 한다. 우리는 역사와 만나야 하고 시대와 만나야 한다. 과거와 만나야 하고 현재와 만나야 하고 미래와도 만나야 한다. 친구도, 가족도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 그럴 때 꿈과 만날 수 있다. 미지와 만날 수 있다. ‘사이’와 만날 수 있다. 진리는 언어가 아니라 오로지 그대와 나 ‘사이’에 있으므로.




그대와 나 ‘사이’에서 박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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