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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Apr 17. 2024

나는 나무가 되었다

천년 소나무

지구라는 강 건너며 세찬 비 맞다 보면
우리 정수리에도 새순이 돋아난다

지난겨울 강가에 이르렀을 때
내 창백한 손엔 어느덧 이파리가 하나 둘

팔은 가지가 되고
발은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

기지개 한 번 더 켜면 나는 이제
천년을 산 소나무

땅 속 깊이 박혀
흙덩이와 애무하고 있다
부지런한 박테리아와 살 섞고 있다

별자리와 수다 떨며 새벽 맞자니
벌레들이 곰실곰실 발가락 잡아당긴다

어제는 간지럼 태우는 지렁이와 만나
가벼운 실랑이를 했다

야야 간지럽잖아
네 살결 참 싱그럽구나

매해 죽어 껍질 벗으며 다시 사노라니
번개가 기다려진다.
기어이 천둥 품을 수 있겠다

끝을 예감하는 일은 의외로 찬란한 것
지구가 태양과의 무도회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지축 흔들리고 은하수 쏟아지겠지
온 우주가 속살 드러내 보이며
조금쯤 솔직해지겠지

누워서 보는 하늘은 눈이 자그럽겠지
너와 함께일 테니 사랑스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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