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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May 12. 2022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첫째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아동기의 미디어 노출’에 대한 책자를 가지고 온 적이 있다. 미디어는 일방적인 자극이기 때문에 뇌에서 작용하는 부위도 어느 한 부위로 한정되어 있지만, 책 읽기라든지 체육활동 등은 뇌에 다양한 자극을 준다는 것이다. 뇌의 다양한 자극을 ‘생각 주머니’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뒤로 ‘○○○하면 생각주머니 작아진다.’라고 말하며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다. 이 말은 하는 사람(전문지식 없는 엄마)도 듣는 사람(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가 수학교재를 풀다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내며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계속 어려운 문제, 모르는 문제가 나올 텐데 그때마다 모른다고 엄마한테 물어볼 거냐. 수학 문제를 맞고 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는지 연습하는 거다 라며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섞어가며 일장연설을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고 하면 ‘사고력 수학, 사고력 향상’ 등등. ‘사고력 즉 생각하는 능력’은 아이들 교재나 프로그램에는 등장하는 단골 단어이다.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기억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 ‘판단, 기억, 관심’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인생의 지표 내지는 인생의 방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학교 공부를 잘하는 능력이라는 말로만 한정해서 쓰기에는 너무너무 아깝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아르헨티나나 예루 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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