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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Aug 04. 2023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거대한 선물 같았다.

윌리엄 피네건의 ‘바바리안 데이즈(barbarian days)’ 중에서

이 책은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버락 오바마가 여름휴가에 가져갔던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가는 내전지역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탐사보도로 여러 차례 중요한 상을 탔다고도 한다. 

1950년대에 태어난 작가의 회고록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의 대부분이 서핑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와 파도, 서핑을 하며 만난 서퍼들과의 이야기, 그들과 함께 탄 파도에 대해 말한다.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페루 등을 여행하며 파도를 찾아다니며 서핑을 하고, 서퍼를 만나고 서핑을 한다. 서핑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서핑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파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야영을 하고 파도를 타다가 몸에 상처가 나고, 파도를 타기 위해 굶주린다. 긴 여행으로 몸에서는 악취가 나고, 바지는 닳아서 너덜거린다. 작가가 저널리스트가 된 계기가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아주 잠깐이다. 이 책은 정말 ‘서핑’, ‘서퍼’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리고 그가 만난 서퍼들에게 있어서 서핑은 단순한 취미나 스포츠가 아니다.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며 끝없는 도전이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그것만을 향해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은 열정과 순수, 무모함과 미련함을 넘나 든다. 

그런 삶은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고 단순하고 명료하다.


책의 제목 ‘barbarian days'를 직역하면 '야만의 날들' 정도가 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새삼 이 책의 제목을 음미하게 된다. 작가처럼 모든 문명의 혜택을 저버리고 파도만을 쫓아 살아본 적은 없지만 내 청춘의 어느 날, 누군가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향해서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을 더듬어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 남은 인생에 그런 날들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윌리엄 피네건의 ‘바바리안 데이즈(barbarian days)’ 중에서    

 

어느 날 저녁, 해가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 첫 별이 벌써 나왔을 때, 나는 파도 하나에 올라탔다. 그 파도는 우뚝 일어서서 산호초를 감아 돌아 탁 트인 바다를 향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벽의 바닥에는 진한 유리병 같은 녹색의 빛이 어렸고, 머리 위에는 흰 빛이 파닥거렸다. 그 외의 모든 것은―바람에 물결 지는 파도의 얼굴, 앞의 채널, 하늘―청록색 그늘 속에 잠겼다. 파도가 휘어지자, 그리고 더 휘어지자, 나도 모르게 비티레부 북쪽으로, 해다 뜨는 산맥 쪽으로 서핑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내 마음이 말했다. 계속 가. 파도는 신앙의 시험 혹은 맑은 정신의 시험처럼 느껴졌다. 혹은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거대한 선물 같았다. 물리학 법칙이 느슨해진 것만 같았다. 속이 빈 파도가 심해로 포효하며 흘러 들어갔다. 이럴 리 없어. 해저에서 올라오는 빛을 받아 하얀 차양이 드리워진 파도는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 마술적 사실주의의 폭발 같았다. 나는 그것과 함께 달렸다. 마침내 사실주의의 폭발 같았다. 나는 그것과 함께 달렸다. 마침내 파도는 뒤로 휘어지며 산호초를 찾아 점점 끝이 줄어들며 채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 파도는 다른 세상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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