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내가 그때 유일하게 알고 있던 것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그래야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야 더 단단하고 더 강하고 더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관찰하면, 내가 뚱뚱한 사람들을 쳐다보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무거운 사람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상처와 가능한 한 멀어질 수가 있다. (록산게이의 ‘헝거’중에서)
록산게이는 12살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때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먹는 것이었다. 그녀는 비만을 넘어 초고도비만이 되었고 그녀의 몸은 사회의 편견과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을 향한 시선에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cage)가 된다.
록산게이의 ‘헝거(hunger)’는 저자의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다. 평균보다 130 킬로그램 내지 190킬로그램이 더 많이 나가는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몸이 견뎌온 무수한 사연들, 늘어난 몸무게와 정신적 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는 자신의 몸의 이야기, 타인에 의해서 쉽게 단정 지어지는 몸에 대한 고백이다.
내 몸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키와 몸무게를 떠올린다. 나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본다. 타인의 평가, 건강검진에서 말하는 동일연령대 여성이 가지는 수치, 내가 동경하는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건 모두 타인이나 사회가 규정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잰다. 살찐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둔 나는 무능력자이다. 교회에서는 신앙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으며 솔직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내가 아닌 진정으로 원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외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가?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늘 불안한 점이 있다. “그러다 잘 안되면?”이라는 질문이 언제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충분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영영 충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어쩌지? (록산게이의 ‘헝거’중에서)
이 책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뒷자리에 초등학교5학년, 1학년 딸들이 타고 있는 차 안이었다. 남편은 ‘성폭행’이니 ‘강간’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뒷자리 딸들이 들을까 걱정되었는지 나중에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2022년 여성가족부의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평생 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25.7%이며, 여성 38.6%, 남성 13.4%이다. 여성은 약 2.6명 중 1명이 평생 성폭력 피해를 1회 이상 경험하며, 남성은 약 7.5명 중 1명이 평생 성폭력 피해를 1회 이상 경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성추행, 강간미수, 강간을 포함하는 신체적 성폭력 피해는 18.5%로, 여성 5.4명 중 1명꼴로 평생 신체적 성폭력 피해를 1회 이상 경험한다고 한다. 남편이 어린 딸들이 들을까 봐 겁내하는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통계로 본다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범죄이다.
누구를 위해서 이런 말들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건가? 우리 아이들이 평생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현실은 다르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과 피해자가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차 안에서 나는 이 책을 첫째가 중학생이 되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의 작은 눈이 커진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한 여자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상처가 곪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딱지가 생기는 과정에 대한 한 사람의 용기 있고 진솔한 고백이자 여전히 흔적이 남은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장기이며 그 상처로 세상을 바라보며 타인을 이해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게 된 지식인의 통찰력이 담긴 이야기라고 말했다. 나는 내 아이가 받게 될 상처에 대해 직면하기를 원하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책을 권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점점 커졌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남편은 조용했다.
“나는 배고프지 않으면서도 배고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우리 아버지는 허기가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다. 나는 다르게 알고 있다. 나는 허기가 마음과 몸과 심장과 영혼 안에 모두 있다는 것을 안다. (록산게이의 ‘헝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