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모두가 말리던 퇴사를 했다

대기업 연구원이었던 나는 왜 도망치듯 떠났을까

by 정석환

25살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출근 첫 주,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석환 씨, 회사생활은 일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야. 누굴 잘 따라야 하는지도 좀 알아야 해.”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협력업체 엔지니어에게 불편한 말을 건네야 할 때면 속으로 늘 움츠러들었다. 어떤 선배는 갑질하는 법(?)을 나에게 알려주곤 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두려움과 압박 속에 작은 실수 하나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고, 하루하루 ‘내가 자꾸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초년생의 첫 직장생활은 가혹하기만 했다.


나중에 드라마 <미생>이 한창 인기였을 때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너무 생생해서, 그때의 내가 다시 떠오를까 봐.


퇴사를 결심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던 날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 나 회사를 그만두려고.”
어머니는 한참 듣고만 계시다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집 형편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는 사실을.


회사에서는 쉽사리 보내주지 않았다.

상무님은 부드럽게 말했다.
“원하면 다른 부서로 옮겨볼 수도 있어요. 너무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요.”


팀장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붙잡았다.
“지금 나가면 내 인사고과에 피해주는 거 알지? 그러고 싶으면 퇴사해.”


옆팀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팀으로 오면 편하게 해줄게. 생각해봐.”


그 모든 말 뒤에 담긴 의도도, 어른들의 표정도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버겁고 숨이 막혔다.


결국 나는 그 모든 제안을 뒤로하고 회사를 떠났다. 도망치듯이.


퇴사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했던 건, 그 상태로 다른 회사를 들어갈 자신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은 ‘미래를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금 보면 도피였지만, 그때는 나를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서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만 찾았고, 운 좋게 포항의 한 대학원에 합격했다.

인천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묘하게 가슴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과 해방이 뒤섞인,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포항 기숙사 방에서 첫날 짐을 풀며 생각했다.
“이제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봐야지.”

지금 돌아보면, 그 도망 같았던 시간이 나를 다시 세우는 첫 걸음이었다.


KakaoTalk_20251207_125957571.jpg 신입사원 교육 당시 받았던 최우수 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