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이 아니었다
포항에서 석사를 마치고 운이 좋게도 서울에 위치한 에너지와 관련된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신의 직장’이었다.
적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입사 초기에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였다.
공공기관에는 대체로 전화가 끊임없이 온다.
“이거 해도 되나요?”
“이런 건 가능한가요?”
대부분 규정의 경계에 걸린 질문들이었다.
신입일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혹은 잘해 보겠다는 마음에 잘못된 안내를 하면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멀리 굴러갔다.
그때부터 나는 일을 잘하려는 사람이라기보다 일이 터지지 않게 막는 사람이 되어갔다.
회의에서 먼저 드는 생각도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문제없을까?”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3년쯤 지나고 나서야 이 방식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비효율은 혁신을 미루게 만들고, 잠재적인 위험은 일을 점점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조심성이 늘어난 게 아니라 성격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극심한 피로감과 회의감에 출근길에 채용카페를 여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별 기대는 없었지만 안 보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직장 선배였다.
야근을 함께 하며 업무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저녁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에 아내가 나에게 운전연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난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고 주말에 운전연수를 핑계로 한 약속을 잡았다. 직장인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그때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걸 확인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직장 내 커플로 1년 4개월을 만나다가 결혼에 이르렀다.
회사에는 끝까지 비밀로 했다.
청첩장을 돌리던 날, 사람들이 놀라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실장님은 입을 벌린 채 몇 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가 꽤 철저하긴 했다는 걸.
사실 이 만남은 내 퇴사 결심을 많이 늦춰 놓았다.
이전에 한 번 퇴사를 경험한 터라 더 신중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아내 앞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들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