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직장에서 멈춤을 고민하게 된 이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이다. 정년까지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강력하다. 적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어느 날, 옆자리 동료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국회의원실 비서관이라고 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동료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게 보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지는 단순했다.
“A와 B가 평가를 받았는데, 왜 B가 아니라 A가 선정됐느냐”는 질문이었다.
동료는 차분하게 설명했다고 했다.
평가는 외부 평가위원들이 했고, 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전화기 너머에서 이런 말이 돌아왔다고 했다.
“한번 해보자는 거죠?”
그 이후로 한 달여간 국회의원실의 압박이 계속됐다.
누구와 누구 사이에 유착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 통화 기록을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오랜 대응 끝에 결국 문제는 없던 걸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분노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마주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피로감에 가까웠다.
내가 있던 곳은 에너지 R&D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이었다.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고,
과제를 수행할 기관을 선정해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돈을 다루는 만큼 감시와 책임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책임이 언제부터인가 일의 결과보다 ‘혹시 문제 될 만한 건 없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출근길에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이 반복됐다.
‘이 안정은, 내가 계속 나 자신을 접어두면서 지켜야 할 안정일까?’
바로 답을 내리진 못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는 계속 갈 수 없겠다는 생각만은 분명해졌다.
그즈음, 아이를 갖게 됐다.
아내의 임신은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안겨줬다.
그동안의 고민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가’를 묻게 됐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