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단위가 달라졌다

일보다 바빴던 육아휴직 1년, 그리고 변화

by 정석환

아이의 출산과 함께 아내와 나는 부부동반으로 육아휴직을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첫 사례였다. ‘아빠 육아휴직’이라는 말이 아직 낯설던 때였다.
평소 회사 생활을 성실히 해왔던 덕분인지 대놓고 눈치를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이후로 아빠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고 들었다.

내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맡은 일을 피하지 않고 해 왔기 때문일 거라고 나 스스로는 생각했다.
선례라는 건 그렇게 조용히 남는 것 같았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런 기대도 있었다.
아이도 돌보고, 그동안 미뤄둔 일에 대한 생각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도 차분히 고민해 보자는 생각.

그 기대는 아이와 함께한 첫 밤에 바로 무너졌다.
신생아 육아는 두 시간 단위로 돌아갔다.
일어나서 분유를 타고,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눕히고. 잠깐 눈을 붙였다 싶으면 또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금도 누가 묻는다면 “일할래, 신생아 육아할래?”
나는 망설임 없이 일하겠다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알고 있던 ‘바쁨’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 열흘쯤 지나자 아내와 나 둘 다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사소한 말에도 날이 섰고, 서로에게 미안해할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그 무렵 부모님이 번갈아 와서 도와주셨다.
그 도움 없이는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품에 안고 지내면서 내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막연한 책임감이나 성숙해졌다는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내가 바라보던 인생의 시간표는 길어야 반세기쯤이었다.
내 삶이 닿을 범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도 그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생각의 단위가 달라졌다. 내 선택이 이 아이가 살아갈 한 세기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나쁜 마음으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세상을 미워하며 사는 태도나, 당장의 편의를 위해 눈을 감는 선택이 이 작은 존재에게 그대로 전해질 것만 같았다.

코로나 시기라 두려움이 더 컸던 탓도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아이를 안고 있으면 괜히 더 걱정이 많아졌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건 완전히 착각이었다.
육아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이 지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마치 잠시 멈췄다 다시 출발한 사람처럼.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걸.

문제는, 그 달라진 사람이 이전의 자리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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