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60대는 아이의 20대
아이가 생기면서 생각의 방향이 달라졌다.
가장 크게 바뀐 건 미래를 대하는 태도였다.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기후위기나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낯설게 느끼진 않았다.
업무상으로도 온실가스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에너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내 삶의 문제로 느끼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기후위기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연도가 있다.
2050년.
그전까지 나에게 2050년은 아주 먼 미래였다.
그때쯤이면 나는 이미 60대에 접어들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연도의 의미가 달라졌다. 2050년은 내 노후가 아니라 아이의 20대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기후위기, 인구 문제, 일자리, 주거 같은 이야기들이 더 이상 추상적인 사회 이슈로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이런 거지’라며 적당히 적응하고 살아가던 태도를 아이 앞에서도 유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일을 하면서 이 방향이 왜 느리고, 어디서 자주 엇나가는지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기후 관련 활동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이미 보고 느꼈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뤄보는 선택에 가까웠다.
문제는 마지막 하나였다.
아내에게 이 생각을 꺼내는 일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정책과 사회 변화를 직접 다루는 일을 하겠다는 선택은 누가 봐도 불안정해 보일 수 있었다.
연구소나 학교 같은 길도 있었지만, 나는 좀 더 현장에서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소위 활동가라고 불리는 일이었다.
꽤 오랫동안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괜히 분위기부터 잡고, 말도 돌려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결과는 내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여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여차하면 돈은 내가 벌면 되지.”
그 순간, 나는 우주에서 가장 복 많은 남편이 됐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