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묻는 한 마디에 멈칫했던 이유
7년간 몸담았던 에너지 공공기관을 떠나 내가 옮긴 곳은 비영리 민간단체였다. 누군가는 이곳을 환경단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기후 싱크탱크라고 불렀다. 이름이 무엇이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임직원의 평균 연령이 낮았고, 호칭은 직급 대신 모두 “OO님”이었다. 외국인 동료도 많았다. 지난 7년간 거의 쓸 일이 없었던 영어를 다시 업무 언어로 쓰게 되면서 체감 피로도는 이전보다 몇 배는 높아졌다.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이직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처음으로 토론회 같은 행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반가운 얼굴을 하나 만났다. 에너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왔고, 나 역시 존경해 마지않던 분이었다.
인사를 나누며 새 직장의 명함을 건넸다. 그분이 물었다.
“아, 직장을 옮겼나 보네. 여긴 기업인가?”
“아뇨, 기후환경단체입니다.”
그 짧은 대답에 상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게 보였다. 잠시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환경단체?”
그 한 단어에 묘한 거리감이 실려 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환경단체라는 말에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못 하게 막는 사람들에 가깝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던 사람의 얼굴에서 그 거부감이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하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혹감과 함께 묘한 반성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왜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하기 어려워하고 있을까?’
그날 하나의 다짐이 생겼다. 무언가를 못 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다짐은 거창한 목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이전 직장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긴장감과 도전의식이 조용히 마음 한쪽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낯설고 불편했던 감정이 내가 이곳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첫 신호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