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언킹
앞에서 세번째 줄에서 뒤를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삼층까지 앉아있었다. 매일 이렇게 극장을 꽉 채우는걸까?
언제부턴가 공연에서 몸은 극도로 힘든데 활짝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이들의 노동현장을 보며 즐거워도 되는걸까 미안해졌다. 나는 다르게 돈벌어서 이들의 노동을 본다는게…
첫곡은 좌석 곳곳의 문에서 동물들이 나왔다. 대왕 코끼리에 감탄, 사람 한명이 큰 기린을 조종하는것에 감탄, 몸 곳곳과 얼굴에 줄을 연결해 우아하게 움직이는 치타, 자전거 영양들. 그들이 모두 소리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게 가슴이 웅장해졌다. 물론 이제 이 초식동물이 진짜 사자왕의 탄생을 이렇게 축하할 일인가? 싶었지만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으니까.
제일 감탄했던 건 어린 심바.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길고 가는 팔다리, 쫄지 않고 대사 치고 노래 부르는 10살 정도의 소년. 아주 반해버렸다. 10시 넘게 끝나는 공연에 졸리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어렸을때부터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즐거운 얼굴들 보며 공연하는 일을 시작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린 심바와 날라가 부르는 왕이 되고싶어 노래도 좋았다. 엄청나게 큰 홍학 위에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조작하는 어린이 둘… 아줌마는 이때까지 별로 열심히 안 살았네^^. 이 장면이 특히 좋았던 건 어린아이의 상상을 무대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초등학생이 상상한 괴물과 케릭터들. 현실에 없는 것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예술의 큰 장점이다.
심바가 거대한 물소 떼에 쫓겨 무파사가 죽는 장면도 엄청났다. 뒤에서 물소들이 떼처럼 나오는 화면을 쏘다가 갑자기 방패같은 물소들이 엄청 나온다. 어린 심바는 그때부터 다리를 가슴께까지 올리는 극한의 유산소 달리기를 시작한다. 나는 한 10초만 해도 힘든데 어린이 체력이 대단했다.
1막의 마지막은 하쿠나 마타타가 장식했다. 책임도 없고 규율도 없이 즉각적인 행복의 삶. 심바를 입양해서 키워주는 게이커플 티몬과 품바는 싱크로율 100퍼센트였다. 역시 커플은 어느 한쪽이 의견이 강하고 다른 하나는 이도 저도 좋은 쪽이어야 순탄하게 흘러가는듯. 사자 왕에 복종하지 않고 둘이 좋은대로 사는게 아나키즘 같았다.
2막의 시작이 아주 좋았다. 심바의 어린시절 오이디푸스 트라우마를 이기는 내용이라 칙칙한데 전원 흑인 배우들이 강력한 칼라풀 의상을 입고 영어가 아닌 언어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라이언킹에 백인 배우들이 별로 안나온다고 듣고 왜지? 싶었다. 전세계 가장 좋은 것들을 가져가는 백인 답지 않았다. (V&A 박물관, 영국 박물관, 동양인 역할의 스칼렛 요한슨) 그런데 사실 아프리카의 사파리를 무대로 하는데 백인 심바는 얼토당토치 않은 얘기다. 그리고 여태까지 너무 흑인, 동양, 중동의 문화를 몰랐던 걸 반성하게 됐다. 더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라이언킹도 백인들이 만든 디즈니 만화가 원작이긴 하지만…
또 좋았던 무대 미술은 위에서 풀들이 내려와 반짝반짝 빛을 쏘는 거였다. 풀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물에 비친 빛이 일렁이는 것 같아서 관객석에서 와! 탄성이 나왔다.
그러다 중간에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하면서 방송이 나오고 극이 중단되었다. 무슨 사고가 있었나 싶었지만 5분 정도 술렁인 후에 다시 시작됐다. 신기한 경험..
아무튼 큰 틀은 조선시대 형제끼리 죽이는 권력다툼같지만 사실은 인생이 돌고돈다는 것 같다(circle of life). 죽음이 아무리 슬퍼도 무파사가 죽으면 심바 자식이 태어난다. 그게 인생이지 뭐.
내 옆에 앉은 호주에서 온 어린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4인 이성애 정상가족의 전형인듯한 어린이 둘과 엄마 아빠가 많이 왔는데 이걸 보러온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