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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당나귀 Jul 03. 2023

모두의 결혼

동성혼 합법화가 아니라 모두의 결혼, Ehe für alle라는 말이 생소하다. 이미 이성애 커플이나 법적 여성-남성 커플은 결혼할 수 있으니 동성혼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캠페인 이름이 ‚모두의 결혼‘이라 더 반가웠다. 결혼을 누구에게나 열린 제도로!


그 취지 자체가 내국인(선주민)이 일하지 않는 곳에 외국인(이주민)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선주민이라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을 곳에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를 촘촘히 메우고 있다. 여동수 센터장의 말대로, 한국과 사업주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으로 구하지 못할 노동력을 이주노동자가 제공하니 더 혜택을 보는 셈이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 비스나(20대) 씨에게 한국의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인 노동자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는 눈을 부릅뜨며 내게 반문했다.
“그래요?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최저임금의 절반만 준다고요? 그럼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세금도 절반만 낼게요.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식 값도, 버스 값도 절반만 낼게요. 그러면 될까요?”
이주 노동자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것이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급여를 주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깻잎투쟁기>



<깻잎투쟁기>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준 책이다. 외국인 돌봄 인력을 한국에서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싼 값에’ 써서 출생률을 높이자는 어이없는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면 버스비도 절반, 가스비도 절반, 건강보험비도 절반, 세금도 절반 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내게 독일인들이 ‘너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월급의 절반만 받아’라고 하면 너무나 어이없을 것 같다. 다른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결혼은 엄청난 혜택이 걸려있는 보험 상품 같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신혼부부 주택 청약, 보험, 비자, 세금 공제 등등 어느 나라든 결혼이란 제도에는 꽤 많은 혜택이 딸려온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세금을 반만 내는 것이 아니듯, 퀴어나 동성애자라고 세금을 반만 내는 것도 아니다. <깻잎투쟁기>의 문장이 내 사고를 바꿔주었다. 행복추구권 가족을 구성할 권리 등등을 빼고 생각해 봐도 이성애자만 결혼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 불합리하다. 왜 같이 세금 내고, 심지어 결혼하지 않으면 세금을 더 냈는데도 전세대출, 주택 청약, 보험, 법적 보호자 등등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것인가? 그런 혜택을 국가가 막아 놨다면 세금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애초에 남의 사랑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내가 누굴 사랑하든 누구랑 결혼하든 생판 남이 참견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없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능하면 평생 선택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혼 자체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을 떠나 결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적이 다른 파트너가 있는 나에게 결혼은 최후의 보루다. 비자 문제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점점 높아지는 소득에 세금이 너무 높다면 결혼을 진지하게 토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결혼은 티파니 반지를 끼워주고 해필리에버에프터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전혀 아니다. 각자의 독립된 공간이 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할 수 있는 상태 같다.


내가 결혼하고 싶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모두가 결혼할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할 미래가 당연하게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게 불합리하다. 나에게는 결혼이 선택의 문제지만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그 선택지조차 없다는 게 나를 망설이게 한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제도를 택한다면, 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사회에 동조해 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같은 이유로 노키즈존 카페에 되도록 안 가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이런저런 사유를 들어 배제해 버리는 것은 너무 쉽고, 그럼 내가 배제당하는 상황도 분명 올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제도가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최후통첩 퀴어러브>에서 다섯 쌍의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과 아이와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느꼈다. 인공 수정을 계획하고, 인공 수정을 커버할 수 있는 건강 보험이 있는지, 가족을 꾸릴 경제적 기반이 있는지를 토론하는 레즈비언 커플들을 보며 다시 한번 한국에서 모두의 결혼이 법제화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해변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눈 감아보라고 하고, 왕 캔디 반지로 놀래켜주고, ‘네가 반지 준비했으면 나 소리 지를 거야’라며 꽁냥꽁냥 데이트 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언니들은 미국이니까 결혼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도 결혼할 수 있게 해 줘라!


하지만 임신을 결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그가 현재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불행은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제가 행복하니, 자녀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가 나보다 더 좋은 엄마가 돼 줄 것 같았어요”라고 세연씨를 가리켰다. 세연씨는 “저는 낳을 자신이 없었는데, 규진이가 낳겠다고 하니 말릴 이유가 없더라고요”라며 크게 웃었다.

- 한겨레 기사 중 <“언니 봐봐, 여기 진한 두 줄”…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한국의 저출생을 해결하고자 가임기 여성 지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소개팅 같은 거에 세금 쓰지 말고 우선 모두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시대가 달라졌고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는데 전통적인 가족상(엄마, 아빠, 자녀, 모두 한국인)을 고집한다고 애를 더 낳지는 않는다. 자신이 행복해서 임신을 결정한 김규진 씨가 너무 멋있었다. 이런 많은 퀴어 커플의 출산을 막는 건 사회적으로도 손실 아닐까? 내가 선택한 파트너와 행복하고, 서로 성장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쁨. 그 기쁨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98152.html


https://www.ildaro.com/sub_read.html?u_ip=212.201.78.174&uid=9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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