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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송이 Apr 07. 2024

첫 이별, 그날 밤

교직인생 처음 겪었던 신규교사 종업식 이야기



*신규발령 첫 학교를 떠났던 n년 전 이야기입니다.



인사이동 시즌에 관내이동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1 희망 학교에 배정되어서 이제는 새 학교로 출근한다. 그래서 2월 10일, 우리 반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쉬운 마음은 당연했지만 내가 그렇게 펑펑 울 줄은 몰랐다. 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애들과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2년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만들어줬는데, 함께 보다 보니 첫 장면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영상을 편집하면서 열 번도 넘게 봤는데 왠지 마지막 순간에 학생들과 다 같이 보니까 눈물이 뚝뚝 흘렀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애들도 한두 명씩 눈물이 터졌고 우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지난 추억이 담긴 영상을 보며 다들 말없이 울었는데, 그 순간 나는 마음이 강하게 연결되는 특별한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다.





시골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다섯 명의 아이들과 2년을 함께 했다. 임용을 치고 담임교사로서 처음 만난 아이들이고.. 나에게 뜻깊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다.


2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냥 사랑만 주지는 못했다. 어리숙한 신규 교사는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혼내고, 미워하고, 동시에 넘치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같이 전국 방방 곡곡 모든 놀이공원을 섭렵했고, 뮤지컬을 보러 가고, 제주도에 다녀오고, 강원도로 스키캠프도 다녀왔던 우리 반 꼬맹이들.






한 번은 개인적인 일로 정말 마음이 쑥대밭이 되어 힘들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 억지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는데, 그때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내 마음은 독기 가득한 수험생이 몇 번이고 돌려본 문제집 마냥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밥을 한 톨씩 먹고 있었다. 그러니 내 앞에 앉은 애가 "선생님!! 팍팍 드셔야죠 팍팍! 이렇게요." 라며 밥을 한가득 떠서 와구와구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ㅋㅋㅋㅋ 정말 웃음이 터지고 힘이 팍팍 났다!


그냥 초등학생 특유의 '마냥 해맑은 장난과 웃음과 귀여움'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세상 심각할 때도 이 아이들이랑 장난치고 있으면 나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따라 웃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무튼 우리의 시간이 촘촘히 담긴 영상을 보며 한바탕 울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을 해줬다.


선생님이 되는 시험을 치고 나서 처음 만난 학생들이 바로 너희라고. 그래서 내가 부족한 부분도 많았겠지만 잘해보려고 노력했다고. 또... 혼낼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 중 상처가 된 순간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그리고 항상 말하는 거지만 밉거나 싫어서 혼낸 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꾸중을 한 거라고,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잘 됐으면 좋겠으니까..


처음 만난 학생들이고,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너희를 평생 잊지 못할 거란 말도 했다. 돌아보니 애들을 붙잡고 너무 교과서적인 말을 했다.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 봐.








아무튼 내 진심이 가 닿았는지 애들이 오열을 시작했다..ㅋㅋㅋㅋㅋㅋㅋ 난 영상 볼 때 울고 이제 그쳤는데 아가들이 30분 동안 계속 울었다;;; 처음엔 같이 슬펐는데 어린이들이 눈물을 미친 듯이 계속 흘리니까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고작 내가 간다고 이렇게까지 슬퍼하는 게 한편으론 좀 감동이기도 하고. 지나가던 선생님이 이 반은 무슨 나라를 잃었냐며 놀렸다.


며칠만 지나도 날 잊고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추억 쌓고, 까르르륵 웃으며 학교를 질주할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찡했다. 내가 마냥 못하지만은 않았구나 싶고.


앞으로 교직 생활을 하며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날 테지만 가장 미숙한 모습으로 만나 같이 성장했던 울반 정말 못 잊을 것이란 느낌이 모든 세포에 일순간 각인되었다.




한 명씩 어울리는 필통 + 과자 + 편지 + 생활통지표 넣어 줬다. 일찍 출근해서 책상 밑에 숨겨 놓기 성공!




2년간 추억을 꾹꾹 눌러 담아 무려 5분 30초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배경음악은 고민을 거듭하다 <송하예-언젠가는>으로 최종 확정. 멜로디가 좋음은 물론이고 가사가 딱 우리 이야기였다. 내가 봐도 너무 잘 만들어서 (^^) 공개하고 싶지만 애들 얼굴과 내 얼굴이 넘 많이 나와서 소중하게 봉인!




편지 쓰다가 지친 이유. jpg

ㅋㅋㅋㅋㅋㅋㅋ


쪽 여백 좁혀가면서 한 장 가득 썼다. 이 정도로 많이 적을 예정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무지막지한 편지가 완성되었다. 물론 학생수가 적었기에 가능했다. 편지는 무조건 손 편지를 써야 한다 주의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양이라 컴퓨터로 작성했다. 어린이분들 양해를 구합니다. ㅎㅎ




눈물 콧물 쏙 뺀 말썽쟁이 넘버원




ㅠㅠ...


내가 학교를 떠난다는 걸 알고 난 뒤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었는지 자꾸만 "선생님은 뭐 갖고 싶어요? 뭐 좋아해요?" 물어왔다. 물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편지만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교무실 다녀온 사이에 한가득 올려진 아가둥이들의 마음. 평소에 작은 거 하나도 한사코 돌려보내서 애들이 내가 물건을 안 받는 거 알고 있는데 마지막날이라고 냅다 가져왔다.




너무너무 귀여운 인형과 초콜릿.

초등학생에게 젤 소중한 거 = 본인이 갖고 싶은 거 = 초콜릿, 사탕, 인형 ㅋㅋㅋㅋㅋㅋㅋ


자기가 사고 싶었는데 선생님 주는 거라고 말할 때 참 귀여웠다. 나도 어릴 때 그런 적 있었는데.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었는데 꾹 참고 이사 가는 친구에게 사 줬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츄파춥스 먹어봤어요? 무슨 맛이 제일 좋아요?" 물어보길래 오렌지맛이랑 초코맛이라고 했더니, 편지에 그 맛 사탕 두 개를 붙여놨다.


귀엽게.. ㅋ






만약 이 학교에 계속 남아있고 반만 바뀌는 거였다면, 첫 제자가 아니었다면, 2년이 아니라 1년만 담임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저릿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도, 아이들도.


처음 만난 학생들이 우리 반 학생들이라서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애들을 가르친 게 아니라 애들이 나를 가르쳤던 2년.


이 힘을 받아 새 학교에서도 잘 지내봐야지.





아무튼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이 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애들 앞에서 우는 게 왠지 부끄러워서 그만 울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던 그때의 나.


경력이 점점 더 쌓이면 나도 언젠간 아이들과의 이별에 무뎌지고, 그런 순간이 오겠지? 그때 이 글을 읽으면서 나 이럴 때도 있었네 추억하고 싶다. 내 마음이 한없이 말캉해지던 그 시간을.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 이 직업 선택하길 잘했다고.


그래서 나의 첫 이별 그날 밤은 외롭지 않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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