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무척 춥다. 어제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변명 같지만, 하루 만에 이렇게 기온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달력에 쓰인 글자로 봤을 때는 이래서는 안 되는 날이다.
곁에 지나치는 사람을 보면 저녁에 무슨 연락이라도 받은 사람들처럼 두툼한 옷을 입고 있다. 어떤 사람은 오리털 파카까지 입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미운털이 박혀서 연락을 안 해준 것이 아니라 나만 날씨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이렇다. 웃기는 이야기를 들어도 남은 웃음을 멈추려는 순간에 나는 시작한다. 반 발자국 늦는 게 아니라 서너 발자국은 뒤처진다. 그건 커다란 맹점(盲點)이다. 그러고도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세끼 밥 먹고 산다는 것이 희한한 일이다. 이 이야기를 계속하면 살맛이 없어질 수도 있으니 그만하겠다.
이 아침에 내 대응 방법은 이랬다. 강매역에서 서정고등학교 앞까지는 성사 천을 끼고 양쪽 둑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걷는다. 여태까지는 얼굴이 검게 타는 것을 방지할 심산으로 나무 그늘이 드리운 쪽 길을 걸었다. 그런데 오늘은 당장 볕이 드는 길로 옮겼다. 한결 낫다,
지금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대책이다. 내일부터는 좀 두꺼운 옷을 입기로 했다. 깊이 생각한 일이 아니고, 누구처럼 김포를 서울시에 합친다는 식으로 나 혼자만 작정하고 있다. 결국은 하나 마나 한 생각이다.
그다음으로, 사무실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30분 정도 늦추기로 했다. 그래도 춥다면 또 30분을 더 미룰 것이다.
돌아오면서 보니, 나무 밑에 멀쩡하게 파란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쌓여 있다. 나무가 이리 빨리 대응(對應)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서서히 양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뭐가 잘못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판단이면 거의 실시간으로 비상사태에 돌입한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잎을 가차 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나는 놀라고 있다. 나 말고도 누군가는 놀라야 하고, 배워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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