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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Nov 17. 2023

나도 백발이다

내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다. 30대부터 염색을 했었다. 심할 때는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염색하는 때도 있었다. 온몸이 가렵고 얼굴과 몸이 부었다. 두드러기도 심했다. 

50대 때 더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며 이런 짓을 더 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더 고집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자라는 머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달이 지나면서 어쩌면 나는 온통 백발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넉 달이 지나자 그런 염려는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이내 체념했다. 머리에서 염색 흔적이 사라지는데 무려 팔 개월이나 지났고, 나는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요즘은 백발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영광은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할아버지일 뿐 누구처럼 ’도사‘로 등극하지는 못하고 있다. 남의 앞날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내가 더 용하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를 면할 수 없다는 게 불만이다. 

    

내 백발은 완벽하다. 눈썹과 수염까지 완벽하게 하얗다. 

그런데 요즘 힘을 쓰고 있는 인간의 백발은 순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인연이 닿지 않은 나는 변방에서 할아버지나 하고 있다는 게 억울할 때가 많다. 이젠 체념했지만 한 때는 내 불운에 상심이 컸다.   

  

근데, 이건 비밀이어서 이야기하지 않아야 하는데 감추는 게 마음이 무거워 이 글을 읽는 분들께만 말씀을 드리겠다. 딴 게 아니라 우리 남자의 거시기한 곳의 주변은 희한하게도 검은 머리로 울창하다. 요즘은 내가 뜨지 못하는 것은, 그 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탓이라고 믿는다. 그것 말고는 내가 야(野)에서 썩고 있을 이유가 없다. 공동묘지에 가면 그 많은 주검이 이유가 없는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  

    

요즘은 거시기 주변을 하얗게 염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 나도 도사가 될 것 같은 믿음이 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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