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진채 Dec 04. 2023

요지부동(搖之不動)

내가 걷는 산책로의 정 중앙쯤 자리 잡은 쉼터에는 여러 개의 벤치가 놓여 있다. 정자 같은 모습의 지붕도 있고, 긴 의자 네 개를 ‘마’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지나가는 시간에는 영감님 여럿이 쭉 늘어앉아 있다. 이 산책로에서는 가장 큰 패거리다. 항상 여섯에서 열 명 정도가 모여있으니 쪽수로 따지면 이 지역에서는 그 세를 능가할 세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이 세를 과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이 나라에서는 다수결이 의사 결정의 필수다. 오래지 않은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인간의 머릿수를 필요에 따라 사사오입(四捨五入)한 역사도 있다.

     

나는 아침마다 그 모임을 지나치면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유쾌한 건 아닌데 입밖에 뱉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우려다. 나는 항상 개밥에 들어 있는 유일한 한 알의 도토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는 뜻이다.  

   

인간, 특히 남자에게 동패(同牌)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 여건이다.     





작가의 이전글 보청기가 필요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