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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Dec 01. 2023

보청기가 필요하세요?

요즘은 비싼 돈 주고 맞춘 보청기를 잘 안 낀다. 단둘이 살던 아내가 무릎 수술을 하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종일을 나 혼자 있을 때가 많다. 

말 상대 없이 혼자 있다는 건 내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평소에도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가 병원에 있는 지금이나, 같이 집에 있던 그때나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내가 자신을 멋없는 사람이라 인정하는 순간, 말을 줄여도 최소한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젊은 사람이 회사에 갔다 오면 아내와 집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딱 세 마디라고 한다. 

“배고픈데 밥 줘.” “애는 자나?” “그만 자자” 

나는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면 보청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보청기는 왜 샀느냐고? 그러니까 말이다. 업무에 필요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일 때문에 가물에 콩 나듯 사람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는데 그게 날마다 있는 일은 아니다. 늙은이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그 생각을 못 했다.  

   

업무 말고 그냥 허물없이 친한 사람은, 차고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많다. 그러나 그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보청기가 필요 없다. 일 외에 만나는 사람은 마음을 열어놓고 무슨 말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친한 친구들과 농담하거나 술 마시면서, 말을 골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막 떠드는 말은 보청기가 없어도 잘 들린다.  

   

그러면 왜 보청기를 샀냐고? 아까도 말했지만 깊게 생각지 못했다. 상대의 말이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은 우선 당황하게 된다. 놀란 우리는 당연히 보청기를 맞춰야 하는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그걸 미리 알았다면 필수품인 양 보청기를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억울하다. 

    

근래에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이 글을 읽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병은 자랑해야 빨리 낳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보청기는 돋보기 가격에 비할 수 없이 비싸다. 그런 물건을 보관만 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참,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릴 뻔했다. 사람들은 상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이야기도 안심하고 지껄이는 경향이 있다. 아주 안 좋은 예를 들면 한때, 외국인은 우리말을 못 한다고 믿고 태연하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던 사람이 많았다.  

    

안 들린 척하고 고개 숙이고 있으면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흔연스럽게 한다. 대놓고 흉보는 걸 참을 수만 있다면, 상대의 정보는 모두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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