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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Dec 18. 2023

아직 살아있는 자의 기억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닌데, 내 곁 벤치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통화 소리를 들었다. 가까운 누군가를 다른 세상으로 보낸 듯한 다른 할머니와의 통화 같았다. 

망자(亡者)나 아직은 살아 있는 자들이 앉아 있는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설움 같은 것을 애써 삼키고 먼저 가신 분에 대한 회상과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통화하시는 두 분도, 또 그 말을 의도하지 않게 듣고 있는 나도 그 내용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죽음, 그것은 우리 나이에는 이미 상수(常數)가 되었다. 피할 수도 없지만, 애써 피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구급차의 숨넘어가는 사이렌 소리를 아득하게 느끼며, 이리 작은 차가 이리 빨리 달리는데,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이 침대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의식을 놔버렸다. 통증 같은 것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내 뺨을 흔들던 의사에 목소리가 들린 것은 얼마나 지난 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요즘도 나는 뒤 허벅지와 장딴지에 아주 희미한 통증이라도 느껴지는 날이면, 구급차에 실려 가던 그 묵은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때 나는 아주 간단한 생각만 반복했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이 통증에서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과 내 그런 소망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방정맞은 예감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보통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때가 있다. 

오늘 나는 의도하지 않은 남의 즉음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을 감당하던 그 순간에 ‘죽음’을 의식했었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실신할 정도의 고통이었으면 그런 두려움을 인식했음 직한 데 그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없다.  

    

그러면, 그로부터 수 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죽음’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글쎄,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우발적인 충동 말고는 숨을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어느 놈이 나를 죽이겠다고 시퍼런 칼 들고 쫓아 오면? 

그건, 경우가 다른 일이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을힘을 다해 도망 안 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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