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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Dec 15. 2023

낙엽을 밟는 여인

아주 조용한 가을날 아침이다. 이런 날은 편한 마음인 게 보통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계절이지만, 그에 반하는 것 같은 모습을 가끔 볼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제일 맘에 걸리는 것이, 다른 잎들은 다 떨어졌는데도, 남은 잎 몇 개가 악착스럽게 매달려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항거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 몇 안 되는 모습이 결코 편할 수 없는 기분을 주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암튼 편치 않다.    

 

가을이면 낙엽이 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는 편이다.

현격한 차이로 먼저 잎을 정리해버리는 나무는 역시 사쿠라다, 내가 이 나무를 항상 ‘사쿠라’라고 모질게 말하는 것은 풀 수 없이 얽힌 마음이 남보다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시절을 겪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 내가 그들에 정도 이상의 적개심을 갖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하여튼, 여러 가지 나무가 시차를 두고 잎을 떨구는데 안타깝게도 그 나무들의 이름을 몰라서 명시하지 못한다. 서울역 앞의 지게꾼도 손님 받는 그들만의 순서가 있었다니, 나무의 잎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순서에 따라 떨어져 구를 낙엽을 정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묘령의 여인을 만났다.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분이지만, 항상 운동 삼아 걷는 그런 차림은 아니다. 잘 갖춰 입고 출근하는 사람의 차림으로 보인다. 그러나 걸음이 한없이 더디다. 

마치 싸리나무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러 가는 아이의 걸음이다. 행여 놀라 날아갈까 봐 뒤꿈치를 들고 숨을 삼키는 긴장된 잠자리 사냥꾼 말이다. 그래서 그분은 시간을 다투며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일 리가 없다. 다들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아침에 유유자적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모든 것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정체가 뭘까? 날마다는 아니지만 자주 만난다. 볼수록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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