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氣盡)이란, ’기운이 다하여 힘이 없어짐‘이라는 뜻이란다.
내가 턱도 없이 한자어를 남용하는 것은 아닐까? 제목은 간단하게 원하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주 한자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언젠가 한 번은 혼날 각오를 하고 있다.
다리에 힘이 없다.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는 것 같다. 근래엔 이런 일이 잦다. 아주 먼 길을 혼자 터벅거리면 걸어온 것 같은 기진함이다.
정신은 몸이 견인하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도 편치 않다. 그래서 영육이 함께 흔들리는 것은 잦은 일 중의 하나다. 그 서러움이나 아픔이 어떤 주기를 가지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다는 마음이다. 누울 수 있다면 더욱더 좋을 것이고.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길을 걷다 보면 굵은 지렁이가 길 한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지렁이는 습한 곳에서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주 맑은 날인데도 흙길도 아닌 포장된 길에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물기도 없는 밖으로 기어 나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런 자해 행위의 이유를 물어볼 사람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본 ’지렁이‘에 대한 묘사(描寫)가 생각난다. 시의 한 구절인지 짧은 수필 한 가닥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구둣발에 밟혀 으스러진 몸으로 더 움직일 수 없어, 아득히 먼 곳에 전깃불 켜진 자신의 동네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모습을 그린 글이었다. 그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맞다. 자지러질 것 같은 통증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