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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Dec 20. 2023

멋진 내 서재로 초대합니다

행신역의 맞이방에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역에 앉아 있으면 목적지가 없는데도 그냥 떠나고 싶어진다. 당연히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실행을 전제로 한 욕심마저도 없어야 하는 게 내 처지다. 나는, 그냥 남이 버겁게 밀고 가는 산처럼 큰 가방을 아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아주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이 넓은 공간,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의 10분 내외만 정체불명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 공간을 통째로 내 서재로 쓰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환경이 아주 좋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쾌적한 기온이 아주 잘 조절되는 곳이다. 어쩌다 얼굴이 보이는 직원을 빼고는 이 넓은 공간은 항상 비어 있다. 가방 끌고 와서 자신이 탈 열차를 기다리다가 열차가 와 멎으면 일 분도 더 머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잠시 정류하는 것이 연속인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용산역보다 거의 배는 더 넓어 보인다. 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이런 곳을 내가 차지한들 누구 한 사람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넓고 조용하고 환경이 쾌적한 공간이 내가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내 개인 서재가 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딱 하나, 문패를 달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라나, 그건 내가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이런 약속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나같이 바다처럼 넓은 서재를 무료로 사용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은 일단 행신역을 찾아오세요. 오셔서 머리 하얀 영감이 노트북 펴놓고 앉아 있는 자리로 오시면 의논할 수 있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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