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의 원장님은 내 머리를 만질 때마다, 검은 머리칼이 한 올도 없는 내 머리에 감탄하신다. 남의 머리를 만진 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순결한 하얀 머리는 처음이라고·····.
그러면서도 나더러 멋쟁이라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러는지 꼭 한 번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그냥 잊고 돌아오곤 했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내가 멋지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 아마 나와 같은 의견이겠지 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스며드는 섭섭함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오늘 낮에 전철역을 향해 가는데, 나처럼 온통 머리가 백발인 여인이 마주 오고 있었다. 백발에 까만 안경을 낀 멋쟁이다. 머리 하얀 사람은 선글라스를 끼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 왜 그리 낯선지를 생각했더니, 안경 렌즈의 모양이다. 크기가 아주 작은 원형이어서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거기다 아주 새까만 색이다.
안경이, 정도 이상으로 작고 새까만 색에 완벽한 원을 이룬 안경을 보면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시력을 잃은 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그 애잔한 모습. 거기에 한 손에 지팡이만 쥐었다면 딱 맞다. 깔끔하게 옷을 입는 등 애를 썼는데 느닷없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컨셉(concept) 때문에 멋 부리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아서 조금은 안타깝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멋쟁이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안경을 끼기 시작하는 순간 내 장래는 영 틀려버렸다고 한탄했었다. 작은 키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마음씨 좋은 우리 마누라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홀아비 신세를 면하지 못해서 인류사(人類史)에 제일 불쌍한 인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끼는 사람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안경 렌즈를 닦고 또 닦아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나타나는 게 안경에 김 서림이다. 그냥 걷는 것도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앉아서 고개 숙이고 핸드폰 같은 것을 들여다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곤란한 일은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이다.
요즘은 안경 렌즈를 닦으며, 남자가 안경을 끼는 것이 대망(大望)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주 쉽게 전직 대통령 중에 안경을 낀 분이 몇 분일까를 따져본 후에 생긴 버릇이다. 안경을 낀 대통령이 있긴 있었는데 그 수가 극히 적다. 그런데, 요즘 자칭 타칭 대권 후보는 거의 다가 안경을 끼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은 안경 낀 사림이 대통령이 된다는 말인 게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이야기는,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예민한 내용일 수도 있기에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귀띔만이라도 하라고? 안 된다.
하찮은 일에 목숨 걸지 말라고 누군가가 말씀하셨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