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다.
내 발밑에는 아주 작은 개미들이 바삐 오가고 있다. 개미 하면 볼 수 있는 그런 줄을 지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아니다. 여전히 바쁜 기색이지만 제 몸보다 큰 먹이를 여럿이서 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잠시 의아해하다가, 아, 이 녀석들이 마땅한 먹잇감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움직임에서는 약간의 느슨함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더 초조한 몸짓으로 끌고 갈 먹이를 찾아서 돌아다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지난가을에 메모해 놓은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왜 밝히는가 하면, 나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개미들이 열심히 밖으로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추운 지금은 개미들은 자기 집에서 식구들과 안락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여름 내내 노래 부르며 놀고 있던 베짱이가, 이 엄동(嚴冬)에 개미집 앞에 구걸하러 오는 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게 꼭 실제 사실이라 믿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교훈 삼아 만든 설정이 꼭 사실과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단편소설에서 설정된 묘사가 사실에 부합하는가, 라는 점이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개미를 연구하시는 분이 생각났다. 글도 쓰시는 분이어서 유명한 분인데, 어쩌자고 존함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엉성한 머리 때문에 나는 항상 지금의 이 개미 떼처럼 쓸만한 알맹이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 무심하게, 먹을 것을 찾아 부산하게 움직이는 개미 떼를 보고 있다가, 혹시 얘들은 지금 시위하고 있는 것 아냐? “못 살겠다 갈아보자! ”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말이다.
그렇기야 했겠냐만, 그럴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었다. 언어 습성이 다른 제삼자나, 진실(fact)과 상관없이 허구(fiction)가 인정되는 장르에서는 일상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은 날이 무쟈게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