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역에 나와 있다. 집이 이 부근에 있으니, 자주 다녔고 앞으로도 자주 다닐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노트북을 들고나와 관망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은 몇 번 안 된다.
오후 늦은 시각이고 지금 출발하거나 돌아오는 열차가 없는 이런 시간의 역에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인다. 그에 더해, 해 기우는 곳 반대편에 있는 이곳은 벌써 어득한 기운이 내려앉고 있다.
행신역은 서울역과 용산역하고는 다르다. 아직도 고양시라면 모르는 분도 많은데 거기에 행신역이라 하면 으레 전철만 지나다니는 한적한 곳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곳 행신역에는 전철은 물론이고 부산이나 광주 혹은 강릉까지 가는 열차가 들고 나는, 말 그대로 복합 역이다.
이 역에 서 있으면, 떠나고 또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벌써 다르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마중 나온 사람도 있고, 전송하러 나온 사람도 있다.
이별과 재회가 일상으로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 모습은 예전하고는 사뭇 다르다. 전송나온 사람은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처럼 열차를 따라가며 손을 흔들지 않는다. 예전처럼 보내고 눈가를 훔치는 사람도 없다. 모든 전송객은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망설이지 않고 돌아서서 나와 버린다.
내가,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기대하고 이곳에 나와 앉아 있는 건 아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멀어지는 임을 바라보는’, 그런 가슴 먹먹한 낭만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애잔한 기운 정도는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는 영감을 보내는 할멈의 모습보다 훨씬 더 메마른 그림에 좀 실망하게 될 것이다.
4시 48분에는 부산으로 가는 열차가, 그보다 조금 빠른 4시 25분에는 여수로 가는 열차가 있다. 아직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있어서 아직은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점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내가 몇 번 와봐서 잘 아는데, 요즘 여행객의 입성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집에서 입던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나온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정말 너무하다고 할 정도로 나들이옷을 준비했었다.
여행이 일상이 되듯, 이젠 오가며 입는 옷도 그냥 무심해지는 것 같다.
하루는 서쪽으로 기울고, 떠날 사람은 지정된 시간에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행상(行狀)이 꾸려지기 전에 나는 일어서야 한다. 텅 비어 있던 맞이방이 북적거리고, 떠날 사람들이 들어서면 특별한 목적이 없는 사람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배역(配役)을 받지 못한 배우는 조용히 잊히는 게 도리다. 열외자(outsider)의 끝(末尾)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