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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Jan 31. 2024

선착순 10명

오늘따라 울적하다. 오래전부터 메모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읽은 탓일 것이다. 천천히 그 내용을 따라가고 있다. 이 글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을 기록한 내용 일부를 손봐서 옮긴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일이지만, 내가 운동장에서 졸도한 사고가 아마 이맘때였을 것이다. 이렇게 더운 날이었고, 오후 첫 수업인 체육 시간이었다. 제식훈련을 했다. 중학생이 무슨 제식훈련이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고등학생들은 목총(木銃)을 들고 총검술 훈련을 하던 시절이었다.


경험한 사람은 잘 아는데, 점심을 굶은 학생이 제일 고통스러운 시간은 오후 첫 수업이 체육 시간일 때다. 나는 학교엘 가나 집에 있으나 점심은 굶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꼭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도 지역에 가뭄이 연속 심했던 때라 끼니를 거르는 건 예사였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이라면, 갑오년에 콩 까먹던 시절이 아니다. 지금에서 겨우 반세기 정도 이전인데, 그땐 모든 잘못은 연대책임(連帶責任)이 일상화되었다. 후진의 교육도 같았다.

     

학교 교육인 체육 시간에 단 한 사람의 잘못에도 전체 아이들을 선착순으로 운동장을 돌리는 게 보통이었다. 나처럼 키가 작고 몸이 약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네댓 바퀴 정도는 많이 뛰어야 하는 게 ‘선착순’이다. 

60명에게 선착순 10명으로 운동장 한 바퀴를 돌리면, 당연히 키 크고 몸 좋은 아이들이 10위 안에 든다. 남은 50명에게 또 시키면·····. 그 짓을 최소한 다섯 번을 더하면·····. 

같은 학년인데도 무녀리들은 태산 같은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몸이 좋은 아이보다 네 바퀴 정도를 더 돌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정한가? 죄라면, 몸이 약해서 빨리 뛸 수 없었다는 죄뿐이었다.  

   

그때는 모든 일이 그랬었지만, 백년지대계인 교육까지 그런 식이었다는 게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내가 교육에 말 보탤 처지는 아니지만, 지금의 내 자식이나 손주의 학교생활을 곁눈질해 보면 그런 비교육적인 만행이 이젠 사라진 것 같다. 이런 발전에, 나는 그 공이 누구에 의한 것이든 고마워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날 체육 시간에 내가 운동장을 몇 바퀴까지 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눈을 떠보니, 학교 양호실이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 담긴 주전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간신히 밖에 있는 수돗가로 갔다. 수도꼭지에 달라붙어 배가 찰 때까지 마셨다. 욕심은 여전한데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아, 수돗가에 멍하게 앉아서 바라보는 하늘이 그렇게 높을 수가 없었다. 그때가 가을이 아니라 겨우 초여름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칠십을 반 이상 넘긴 오늘, 왜 그 아득한 지난날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그때 버릇으로 나는 지금도 혼자서 잘 운다. 그것 외에는 내게 허락된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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