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노래 -
부산에 간다. 사십몇 년 전에 십이 년을 살았던 곳이다. 여벌 옷 하나 없이 책가방에 소용도 없을 교과서 몇 권 넣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찾아갔던 부산이다. 빡빡머리의 해남 땅끝 아이가 부산에서 어찌어찌해서 부산 여자아이를 만나 그 애의 가족들과 유일하게 연을 맺었었다.
오늘은 청승스럽게 내려는 빗속을 숨을 내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어제인 것 같은 두 사람 인연의 시발인 부산을 찾아가고 있다.
생각하면 눈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남자애와 여자애는 형편없이 늙어버렸다.
내 늙은 아내보다 위 처남의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한다기에 병문안하러 부산을 가는 거다. 사단은 달포 전에 일어났으나, 경과를 보고 연락을 할 것이니 그때 내려오라고 해서 기다리는 데 조금은 비장한 목소리로 숨 쉬는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모습은 평온했다. 수술하느라 머리를 깎아버려서 남자처럼 보이는 얼굴은 전혀 고통이 없는 평온한 모습이다. 깊은 잠에 취한 듯 방심한 표정은 고통에 신음하는 처절함이 없어서 보는 사람은 부담이 덜하다. 이마 위의 머리뼈를 들어내서 윗부분이 푹 가라앉은 모습이 가슴을 짠하게 했지만, 그 정도는 견딜 만했다.
밤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한다.
당사자인 처남 외에는 아무도 단정적인 어투로 말할 수가 없다.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에둘러 말할 뿐이다. 거의 다 현실적인 대처 방법이다. 설사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남을 수밖에 없는 장애에 대한 걱정이다.
환자 걱정도 걱정이지만 처남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도 있다. 자식이 일 남 이녀인데 장녀는 결혼을 시켰고 아들과 막내딸은 결혼 날짜를 잡아둔 상태다.
문제는 새로 들어올 며느리에게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봉양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처남 혼자서 뒷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특히 처남은 화훼농장을 하므로 일손을 놓을 수도 없다. 뜬금없이 찾아온 이 우환에 식구들은 모두 망연해하고 있었다.
처남은 다행히 경제적인 여력은 있다. 살림이 곤궁해서 치료비까지 걱정할 형편이었으면 더 암담했을 거다. 그러나 천금이 있다 해도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 한 사람이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데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하겠는가. 이런 아픔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자식도 형제도 친척도 어떻게 나누어지고, 갈 일이 아니다. 더더욱이 사회의 무슨 제도가 도움이 될 수도 없다.
해가 서산으로 살포시 내려앉을 때 아릿하게 번지는 붉은 노을이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이 아니라고 누군들 장담할 수 없다. 실낱같든 해가 완전히 가라앉아 어슴푸레한 잔광마저 사라지고 천지가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하면 살아 숨 쉬는 것마저 부질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찢어지는 것 같은 깊은 절망에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 슬픔은 평생을 같이하는 그림자일 수도 있다. 그 그림자는 오늘처럼 궂은날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라오는 열차 안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부부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에 짝을 잃은 채 외로움이라는 애물단지만 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보고 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절실한 외로움이 분명하다. 슬픔이 가슴에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