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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와 걸은 단 한 끗 차이

- 노인의 노래 -

by 임진채

오랜만에 정말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강촌 수필이라는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던 배 선생한테서 카톡이 왔다. 잠시 카톡을 주고받다가 통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글로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편한 세대다. 특히 종이에 쓰는 것은 그럭저럭 꾸려가는데 기계에다 두드리는 것은 부담을 느낀다. 안 본 지 5년은 된듯싶은데 할 말이 흐르고 넘칠 수도 있다. 그걸 어떻게 핸드폰이라는 작은 기계에다 두드린단 말인가. 능력 이전에 감성적으로 부담을 느낀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그분은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분이었다. 잠시 이야기했을 뿐인데 글에 대한 애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하게 현재 활동에 관해서 말하게 된다.

그때도 나는 블로그라는 것을 하고 있을 땐데 그분은 기존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활동할 필요를 안 느낄 환경이었던 게다. 그때 내 생각은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건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분처럼 활동 범위가 넓지 못했기 때문에 온라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통화 중에 무심코 하는 그분의 말씀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내가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헛소리를 하는가 말이다. IT 쪽으로 말하면 그분이나 나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게하고 걸은 단 한 끗 차이일 뿐이다. 그걸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어제는 며느리에게 백신 추가 접종 신청을 해 달라고 했다. 2차까지 다 맞았는데 추가로 맞아야 한다기에 신청하는데 그게 내 뜻대로 잘 안 된다. 물론 지난 1차 때는 아주 자랑스럽게도 내가 거뜬히 해치웠었다.

종일 낑낑대다 포기하고 아들에게 부탁했는데 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제 아내에게 재배당한 모양이다. 며느리가 와서 단숨에 톡톡톡 하더니 “아버님 다 됐어요” 한다.

진짜로 내게 필요한 건, “아버님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는 설명인데 나의 사랑하는 며느리는 예전처럼 번개처럼 끝내 놓고 아버님 됐어요 하고 만다. 딸들은 곰살맞게 잘 가르쳐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느리가 방을 나간 후 아내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여정이 할매, 할매 친구들한테 말할 때는 내가 접종 신청했다고 말해. 알았지?”


참 웃기는 내 신세다. 길이 안 보인다. 더듬어 찾아가는 것도 이젠 지겹다. 내게는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해줄 딸도 없다. 사람 팔자란! 에~효.

그 주제에 남에게 가르쳐주겠다는 말이 입에서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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