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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생활자 Feb 19. 2023

무제

제목을 짓진 못하겠지만 쓰고 싶었다.

한국인이 잘 보이지 않는 해외로 휴가를 가는 편인데, 가서 한국인을 만나면 물어본다. "대학생이에요?" 나의 유럽여행은 나의 미련함으로 인해 너무 가난했어서 2유로 주고산 10개짜리 뺑오쇼콜라를 2개씩 저녁으로 먹으며 5일을 넘게 파리에 있었다.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은 영양실조 비슷한 입병으로 마무리되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로 해외에서 한국인 대학생을 만나면 맛있는 밥을 사고 싶었다. 회사 그만두고 온 백수는 안된다. 부러우니까. 나처럼 휴가온 직장인도 안된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슬픔만 나누면 되지, 먹을 것 따위를 나눌 필요가 없다.


그 대학생 친구가 나중에 직장인이 되면 나처럼 가난했던 대학생에게, 나처럼 맛있는 저녁 한 번은 베풀어주기를 내심 바랬었다. 인스타에서 보는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걸까.


두 번째 단락까지는 나의 몫이다. 하지만 나의 선의가 다음 선의로 이어지기를 바란 세 번째 단락은 나의 몫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이런 비슷한 적이 있었다.




여자 선배들과 지내는 것이 어려워서 신입생활은 꽤 많이 서러웠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서 뭇 여자 직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은 거라면 차라리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아마 5년 전 20대 후반의 ExTP 나는 선배들에게 요즘의 MZ 취급을 받았던 것 같고, 어느 날인가 결심했다.


"신입이 오면 난 정말 잘해줄 거야"


시집살이도 당해본 년이 한다고, 시집살이당한 시어머니가, 후에 시집살이한다던가. 


취준시절을 위로해 줬던 것은 왕좌의 게임이었고, 드라마에서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에게 붙은 이름 중 하나가 "(노예) 사슬을 끊는 자"아니던가, 신입시절의 나는 내리 갈굼의 "사슬을 끊는 자"가 되고 싶었다.


정말 나의 기대대로 다음 해에 신입이 왔다. 연쇄(화분) 살인마 수준으로 뭔가를 "키움""돌봄"에는 재주가 없는데, 그 친구에 관해서라면 꽃화분 기르듯 정성을 다했다. 나 말고 다른 선배들한테, 부지점장님한테 혼났다고 울면서 전화가 오면 그 전화를 받아서 달래준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야근하면서 심사의견서를 쓰는 중이었다), 모르는 게 생겼다고 메신저가 오면 내 일은 제치고 뛰어가서 알려줬다. 친구들 모임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면, 먼저 보내고, 그 친구 몫의 일을 야근까지 해가며 대신해주기도 했다. 아마 멋진 선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나 자신에 상당히 취해있었던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느 날, 퇴근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튀어나온 "언니 저는 돈 없으니까 이거 언니가 사요"라는 한마디.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그 가게와 메뉴까지 생각이 난다. '그래 너랑 나랑 월급은 같지만, 그럴 수 있지'라고 속으로 누르고 밥은 샀다.


또 어떤 날, 소수의 상사분들만 어쩌다가 알게 된 나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를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농담 삼아 이야기할 때. 모든 마음을 접었다. 못된 시어머니가 되어 시집살이를 시킬 생각도 없었지만, 더 이상 이 아이는 내 화분이 아니었다. 말라죽던 계속 푸르던 내 알바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쓰자면 말라죽기를 바랬던 것 같다.




다음 해에 또 신입이 들어왔다. 이번 신입에게는 쓸 마음이 없었다.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이 바라봤다. 아니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번 신입직원의 면수습(수습기간 종료, 정직원이 되는 것)을 축하하며 만든 롤링페이퍼에 그 친구가 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힘들죠? 나한테 물어보면 잘 알려줄게요!"


이 아이는 나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을 테니,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차가워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나처럼 이 사슬을 끊어보려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신입시절 나에게 가장 잘해줬던 여자 선배님이 떠오른다.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아마 그분은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잘해주셨던 것 같다.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나처럼 어리석게 선을 넘지는 않으면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시집살이를 당했으나 시집살이시키지 않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배운 거라곤 우리에겐 선(善)도 필요하지만 선(線)도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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