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왜 플스를 싫어할까.

플스를 팔았다.

by Joe
아끼던 플스를 팔았다.


왜 아내는?


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글을 좀 쓰려한다. 왜 아내들은 플스를 싫어하는가? 내 아내 역시도 플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플스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가 맞겠다.


결혼하기 대략 18개월 전 즈음 친구의 권유로 플스를 사게 됐다. 게임이라고 모르는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성인이 되어 게임을 접하니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무료하다면 무료할 5년간의 회사생활의 반복으로 새로 접하게 된 플스는 매일 밤 멀리 있는 친구와 회포를 풀기 위한 충분한 장치였다. 처음에는 그 재미에 빠져 새벽달을 보는 게 일상이기도 했다. (물론 출근이 허락하는 한)


전여친(현아내)과의 긴 연애를 끝으로 올해 4월 결혼을 했다. 내 물건 네 물건이 섞이는 하나의 집으로 오니 내 플스 역시 내 방에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다. 아내 역시 간혹 나와 같이 철권이던 it takes two 같은 게임을 즐겨했다. 혼자서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같이 있을 때 충분히 즐기더라. 그러나 첫 불씨는 금방 나타났다.


친구와 게임을 한 두판하고 나서 침대로 가면 안방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너무 달랐다. 서운함의 진실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아내가 내가 게임을 할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고로 나는 아내와 함께 집에 머물 때는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게임하지 않는다.


이 마음을 듣고 나니 참 곧이곧대로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나로서는 일주에 2-3번 정도 친구와 노는 건데 그걸 싫어한다는 게 서운하기도 참 서운했다. 아내는 나의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것일까,,, 아내 역시 개인 취미활동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일이 3번째 반복되던 날, 저번 주! 플스를 팔기로 마음먹었다. 팔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억누르며 여전히 잘 즐기고 있던 것들을 파는 건 처음이었다. 매우 힘이 빠지는 일이었지만 아내와의 이상한 분위기를 버티는 것보단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했던 데스스트랜딩 플스4Pro

그래서 왜 아내는 플스를 싫어할까?


나는 이것에 대해 꽤나 깊은 고민을 했고 내 아내를 기준으로 작은 답 몇 개를 냈다. 답이라고 해야 답도 아니겠지만 남자는 언제나 답을 원하는 동물 아니던가.


가장 근접한 답은 위에서 말했듯 혼자인 게 싫은 거다. 그렇다면 혼자라는 느낌은 언제 받는 것 일까? 게임은 단방향 통신이다. 내가 캐릭터를 움직이면 캐릭터는 나에게 맞춰 움직일 뿐이다. 친구와의 게임은 양방향 통신이다. 내가 친구와 말을 하며 주고받는 모든 게 게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가 양방향 통신을 하는 순간에 아내는 소외감을 느낀다. 자신과 노는 게 재미없냐라는 생각까지 한다. 적어도 나는 그것과 게임, 친구가 주는 재미는 다른 차원이라 생각한다. 간혹 억울한 건 게임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유튜브를 시청한다. 그렇담 나는 근처에서 비슷한 행동을 할 뿐이다. 그녀를 위해 고가의 피아노도 샀지만 지금은 아내의 방 한편에 놓인 고가의 장식품이다. 천신만고의 노력도 소외감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지 않았다.


두 번째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아주 개인적인 사담이지만 게임을 접한 이후 다수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하나의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에 살기 시작한 듯 여러 규칙과 여러 UI를 익혀야 한다. 그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 지치고 힘든 일이다. 다수의 게임을 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에 거부감이 없다. 결국 익숙해지는 그들이 참 대단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 느낌은 어쩌면 과대해석이고 이 모든 건 내가 게임을 좋아하고 난 이후에 든 생각이다. 게임을 많이 접하지 않은 아내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이 부정적 시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모른다. 그걸 뒤적거려봤자 나에게 이해심을 더해주지도 않을 거고 자유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왜 아내는 플스를 싫어할까를 말하다 한풀이만 잔뜩 내놓았다. 하지만 결국 결혼은 둘의 삶이다. 하나의 삶이 완벽해질 수는 없다. 다른 하나에게 주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둘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해를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면 노력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다. 그게 나고 그래서 플스를 팔았다.


내가 아닌 둘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