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
오늘 저녁은 마치 결혼 전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혼자 글을 쓰고 싶은 밤이다.
난 감정이 불어다 주는 파동에 참 약한 사람이다. 조금만 눈과 귀의 안테나를 세우고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쓰고 싶은 글귀가 넘쳤고 한 가지를 잘 관찰하다 보면 곧 잘 그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여전히 젊다고 말할 수 있지만 더욱더 젊은 날의 나는 마음의 소년이 더 넓은 들판을 고르게 뛰어다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첫 번째 줄의 뜬금없는 소리는 별게 아니게 들리거나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전엔 스스로 감정을 불어다 주는 물결과 바람을 일으키곤 했다. 그 말은 즉슨 누렇지만 따뜻하고 방을 잘 밝혀주는 불빛과 인센스가 타오르며 코로 흘러들어오는 타국의 향, 볼이 불긋하게 취할 정도의 상태, 가장 아끼는 헤드셋을 꺼내 귓가 바로 옆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오감이 팔감이 돼도 부족할 정도의 감각의 안테나를 세웠고 그 안테나들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곤 했다.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지만 둘을 존중해줘야 하는 시기가 오고 나니 가만히 방에 앉아 또는 누워 글귀를 끄적여볼 시간이 없다. 아니 시간이 없는 건지 분위기가 없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기회를 만들고자 했던 마음속 소년은 잠이 들었고 여러 감각의 안테나는 녹이 껴 부자연스럽게 돌아갈 뿐이었다.
오늘 점심 이후 회사 연못에서 처음 보는 꽃을 봤다. 그곳이 나에게 주는 자연의 향기와 녹음 짙은 풍경은 익숙했지만 붉고 괴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이는 그 꽃은 그 자체로 내게 호기심과 낯선 감정을 주었다. 철쭉이라기에는 너무 말랐고 잡초라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기쁘게도 내 주변에는 식물 박사님이 한 분 계시어 바로 카톡을 해보니 상사화라는 꽃이란다. 열심히 관찰해보니 그 꽃에는 이파리가 없더라. 뭐가 그리 급하게 크는건지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듯 꽃봉오리를 선두삼아 올곧게 생긴 줄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처럼 매끈한 줄기와 예쁘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사진을 몇 컷 찍었고 사고력을 발휘해 너는 왜 그렇게 자라니? 에 대해 알아내려 했지만 손은 벌써 구글에 상사화를 검색하고 있었다.
꽃이 피고 그 꽃이 지고 나면 이파리가 나온단다. 잎과 꽃이 서로를 만날 수 없기에 그리워해서 상사화라고 한다. 나 같은 인간이 이 꽃을 처음 발견했으면 벌거숭이 꽃이라고 지었을 법한데 세상에는 너무나 멋있는 낭만을 가지고 식물에게 이름 지어주는 사람도 있다. 이 사실을 알고 꽃을 보니 아름다움과 애틋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난 오늘 이른 오후에 그 꽃을 발견하고 관찰했다. 그 관찰과 호기심이 오늘 저녁 내가 앉아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만 같다. 과거의 난 많은 감상에 빠져있었고 그 감상을 그리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주 요즘은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다. 빠졌다 싶으면 그 문장과 단어들은 머리에 몇 분 머무르지 않고 사무실 자리에 가서 앉거나, 아내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난 요즘 꽤나 불안정하다. 감정을 토해내던 시기는 나에게 불안함을 안겨줬지만 웃기게도 삶의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나는 감정을 주체 못 하면서 주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빠졌다. 누군가 표현의 기술을 빼앗아간 것만 같다.
난 요즘 무엇하나 내 뜻대로 혹은 내가 생각하는 평화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아름다운 상사화를 데리고 과거의 나에게 상사병에 빠져 이 글에 부정적 회상의 끈을 붙여주는 게 미안하다. 참 좋은 주제라 생각했는데..
내일은 명절이다.
아주 아주 힘든 명절이 될 것만 같다. 명절 간 오늘과 같은 시간이 있다면 다시 여기 앉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곳에 적어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