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자산 불평등

by 박재용

평균 자산 5.4억원, 중위 자산 3.5억원

100명이 사는 마을을 다시 상상합니다. 이번에는 소득이 아니라 자산, 즉 각자가 가진 재산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작은 10명은 자산이 2,700만원입니다. 2,700만원이면 웬만한 집 전세 보증금으로도 턱없이 모자라죠. 월세 계약의 보증금, 국민연금 불입액, 자신이 사는 집의 전자제품, 배달 라이더의 오토바이, 택배 운전사의 트럭 정도이겠습니다.


그 다음 10명의 자산은 9,720만원입니다. 이조차도 서울에선 전세 보증금이 되기 어렵죠. 서울이 아닌 지방이라면 전세 보증금일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도 일부 포함됩니다. 혹은 지입차주의 트럭일 수도 있겠네요.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은 자산이 약 3.5억원입니다. 지방이라면 아파트 한 채, 서울이라면 빌라 한 채 정도를 가진 사람이겠네요. 그런데 40살이 넘는 사람이라면 국민연금 불입액도 꽤 될 터이고 자가용이 있는 집이 전체 가구의 70% 정도니 그 또한 생각해야 하고, 개별적으로 붓는 연금이나 적금 등을 생각하면 서울이나 서울 인근의 판교, 일산 등에 산다면 집을 가지고 있기는 힘들겠습니다. 전세 + 연금저축 + 자가용 정도이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많은 10명은 자산이 24억원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의 89배입니다. 이 사람이 전체 자산액을 늘려서 마을의 평균 자산은 5.4억원이 나옵니다. 하지만 100명 중 64명이 이 평균보다 적지요.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상위 10명이 마을 전체 자산의 44.4%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90명이 55.6%를 나눠 가진 것입니다. 2024년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소득 불평등보다 심각한 자산 불평등


이전 포스팅에서 2023년 평균 소득 7,185만원과 중위 소득 5,681만원의 차이가 26%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산은 어떨까요? 평균 자산은 5.4억원이고 중위 자산은 약 3.5억원입니다. 둘의 차이는 54%로 소득 격차의 두 배가 넘습니다.


더 정확한 지표를 볼까요? 한 사회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가 지니계수입니다. 0에 가까우면 평등하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합니다. 2023년 소득 지니계수는 0.323인데 자산 지니계수는 0.612입니다. 역시 두 배 가까이 되지요.


더 큰 문제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산 지니계수는 2011년 0.619에서 2017년 0.584까지 개선되었다가, 2018년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0.612를 기록했습니다.


왜 자산이 소득보다 불평등할까?


소득은 매년 새로 벌어야 합니다. 작년에 많이 벌어도 올해 못 벌면 끝입니다. 또 60살이 넘으면 소득이 급격히 줍니다. 하지만 자산은 쌓입니다.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소득이 없어도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면 자산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산은 자산을 낳습니다. 10억이 있는 사람은 그 돈을 투자해서 연 3%만 수익을 내도 3,000만원이 생깁니다. 하지만 1억이 있는 사람은 같은 수익률로도 300만원밖에 못 법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증명한 바로 그 법칙입니다. r > g.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으면, 자산을 가진 사람이 노동으로 사는 사람보다 빠르게 부를 축적합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2020년대에 한 번도 3%가 된 적이 없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자 수익은 늘 3% 이상이었습니다.

또 하나 소득은 본인이 벌어야 하지만 자산은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30대의 자산 격차는 20대보다 훨씬 큽니다. 왜일까요? 부모의 지원으로 집을 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국세청 자료를 보면, 연간 증여세 신고 건수가 30만 건을 넘었습니다. 증여 재산 가액은 60조원이 넘습니다. 이것은 세금을 내고 신고한 것만 집계한 숫자입니다. 자산 불평등은 세대를 넘어 확대 재생산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른 것입니다.


부동산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우리나라 가구 자산의 75%가 부동산입니다. 금융자산은 25%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산 격차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것입니다. 2018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지니계수도 함께 치솟았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억원의 자산을 얻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격차를 좁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8년에 집을 산 사람과 2020년에 집을 산 사람, 단 2년 차이로 자산 격차가 수억원 벌어졌습니다. 같은 직장, 같은 연봉을 받아도 말입니다.

금융자산은 더 심각하다


전체 자산도 불평등하지만, 금융자산만 따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상위 10%가 금융자산의 5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체 자산(44.4%)보다 더 쏠려 있습니다.

또 하위 10%의 평균 금융자산은 402만원인데 상위 10%의 평균 금융자산은 6.7억원으로 그 격차가 167배입니다. 전체 자산 격차(89배)보다 훨씬 큽니다.

왜일까요? 집은 꼭 필요하니까 하위 계층도 어떻게든 장만하거나 전세로라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위 50%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입니다. 금융자산은 '여유'가 있어야 쌓을 수 있습니다.

월급이 300만원인 사람은 월세,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저축할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월급이 1,000만원인 사람은 생활비를 쓰고도 수백만원을 저축하거나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금융자산이 다시 수익을 낳습니다. 주식, 채권, 부동산 투자로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소득은 '플로우', 자산은 '스톡'


경제학에는 플로우(flow)와 스톡(stock)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소득은 플로우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계속 들어오고 나갑니다. 올해 7,000만원을 벌어도, 내년에 또 벌어야 합니다. 자산은 스톡입니다. 쌓여있는 저수지 같은 것입니다. 한 번 쌓이면 그대로 남아있고, 거기서 이자와 수익이 계속 나옵니다.


플로우가 끊기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스톡이 있으면 플로우가 끊겨도 버틸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리가 목격한 현실입니다. 소득이 끊긴 자영업자, 프리랜서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하지만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집값이나 주식이 오르면서 자산이 더 늘어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이유입니다. 자산은 안전망이자 기회입니다. 자산이 있으면 위기를 버티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자산이 없으면 항상 불안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구조적 원인


자산 불평등이 이렇게 심해진 것은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 없이 흔들렸습니다.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투기 수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7~2021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50% 이상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평균 소득 상승률은 20%도 안 됩니다. 집을 가진 사람은 일하지 않고 수억원을 벌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해도 집값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공공 주택 공급도 부족했습니다. OECD 평균 공공 주택 비율이 8%인데, 우리나라는 6%에 불과합니다. 시장에 맡겨두니 투기가 판쳤고,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을 포기했습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는 일해서 버는 돈(근로소득)에는 높은 세금을, 자산으로 버는 돈(자본소득)에는 낮은 세금을 매깁니다.


- 근로소득 최고세율: 45% (과세표준 10억 초과)

- 금융소득 세율: 최대 27.5% (종합과세 대상도 제한적)

- 주식 양도차익: 대주주 외에는 거의 과세 안 됨

- 부동산 임대소득: 신고율도 낮고 실효세율도 낮음


일해서 연 5,000만원 버는 사람보다 15억 자산으로 연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세금을 훨씬 적게 냅니다. '노동은 손해, 자산은 이득'입니다. "영끌"로 투자에 뛰어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좋은 투자 기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 프라이빗 뱅킹 (PB): 자산 10억 이상부터 전담 상담사가 고수익 상품 추천

- 사모펀드, 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이 수억원, 일반인은 접근 불가

- 기업 공개(IPO) 전 투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인맥과 정보가 필요


반면 일반인은 은행 예금(연 3%)이나 펀드(수수료 높고 수익률 불확실)에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는 단순한 복리 효과가 아닙니다. 시스템 자체가 부자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자산 불평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물림입니다.


부모가 부자면 자식도 부자가 됩니다. 단순히 유산을 물려받아서만이 아닙니다. 부자인 부모는 자식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제공합니다.

- 좋은 교육 기회

- 사업 실패해도 버틸 수 있는 여유

- 집 마련 자금 지원

- 인맥과 정보 네트워크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 (최대주주 할증 포함 시 60%)로 OECD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공제와 절세 기법이 많아 실효세율은 훨씬 낮습니다. 게다가 증여는 더 쉽습니다. 10년마다 5천만원(자녀 기준)까지는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은 시세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산이 세대를 거쳐 축적되고, 출발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데이터 출처**:

- 통계청,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 국세청, 2023년 국세통계연보

-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조사 분석


**참고**:

- 이 글의 모든 수치는 공식 통계자료에 근거했습니다

- 그래프는 2024년 3월 기준 실제 데이터입니다

- 중위 자산 약 3.5억원은 5분위와 6분위 평균을 기준으로 추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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