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실, 철도를 달리는 열차일지도 몰라.

by 이태헌

눈을 뜬다. 오늘도 꿈을 꾸지 않았다. 여행을 온 이후로는 오히려 현실이 꿈같이 느껴진다.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는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집게를 집고 음식들을 접시에 담는다. 평소와 같이 눈을 감은 채로 음식을 먹는다. 태우는 나와 달리 생생해 보인다. 우리는 밥을 먹고 숙소 방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어제 갔던 호수를 낮에 한 번 가보기로 한다. 밥을 다 먹고 숙소로 올라간다. 아침 새소리가 아비스코에서의 아침을 축하해 준다. 할 만한 것이 따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지금 호수에 가기로 계획을 바꾼다. 스키복을 입고 목도리를 두른 뒤에 숙소를 나선다. 오늘도 어제처럼 하늘이 맑다. 푸른 하늘의 간간이 보이는 흰색 구름이 아름답다. 길을 걷다가 보니 꽃가지에 눈꽃이 예쁘게 피었다. 뾰족하게 피어난 새하얀 눈꽃이 가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털 뭉텅이 같기도 하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큰 설산이 보인다. 저 거대한 설산에 비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지 여실히 느낀다. 아비스코의 설원은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같은 장소임에도 이렇게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는 구글맵을 보고 길을 찾아서 간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눈의 푹신한 느낌과 뽀드득 대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폭포가 보인다. 밝을 때 보니 폭포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대로 보인다. 폭포가 바위에 부딪쳐서 깨지는 듯이 튀는 모습이 생동감이 넘친다. 물이 언 모습이 마치 동굴을 지탱하는 기둥 같아 보인다. 멍하니 풍경을 바라본다. 저 멀리로 두 개의 설산이 보인다. 산의 중간 부분 위로는 모두 눈으로 덮여 있고, 산의 돌 부분은 검은색으로 보인다. 바닥 쪽에는 눈이 쌓여 있다. 마치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중간 부분에만 초코 파우더를 뿌린 것 같이 생겼다. 두 개의 설산 사이로 구름이 지나간다. 놀랍다. 아비스코에서는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인가 싶다. 그렇게 또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비스코에 온 이후로 복잡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매일 무언가가 내 머리를 조이는 듯이 아프던 머리도 아프지 않다. 광활하고 넓은 아비스코와 그 하늘이 좁은 상자 안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1시간 동안 풍경을 보면서 멍을 때리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숙소 식당으로 내려간다. 카드로 돈을 지불하고 그릇을 든다. 어제 아침 조식과는 메뉴가 약간 다르다. 베이컨, 햄 살라미, 연어, 토스트 빵, 스크램블 에그에 크루아상과 버터, 딸기잼, 순록 스튜가 메뉴로 추가되었다. 음식 냄새를 맡아서인지 배가 더욱 고프다. 우리는 접시에 취향대로 한가득 담고 창문 옆에 테이블로 가져간다. 오늘도 날씨가 화창하다. 푸른 하늘에 하얀색 구름이 조금씩 끼어 있다. 태우가 문득 창문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나는 내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을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자신도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맡지 못할 은은한 감정이 느껴진다.

태우가 부럽고 대견스럽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해내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그 자유가 부럽다. 지금까지는 항상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성공을 향해서, 사회가 정해 놓은 철도를 열심히 달리는 기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철도를 벗어났을 때 겪을 상황이 무서워서, 꾸역꾸역 기침 나는 숯을 참아가면서 달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일까, 태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눈을 반짝이면서 말할 때면, 왠지 우울하고 부럽다. 때로는 “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독설을 퍼붓고만 싶어 진다. 그래도 나는 말한다.

“잘 되겠지. 열심히 해봐.”

우리는 접시를 완전히 비우고서는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누워서 할 것을 생각해 보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난 3년과 다른 요즘이다. 결국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을 바라보기만 한다. 또다시 일몰이 지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하루가 저문다.

붉은 해가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해가 지고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충전 중인 태블릿을 빼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고서는 침대에 편안하게 눕는다.

눈꺼풀이 가볍다. 눈을 뜬다. 영화는 멈춰져 있다. 아마 태우가 멈춰 놓은 것이겠지. 머리가 맑다. 고등학생일 때에는 낮잠을 자면 항상 몽롱하고 머리가 아팠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눈도 전보다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시계를 보니 4시 10분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태우에게 어제 갔던 사우나에 가자고 한다. 가운을 챙겨 사우나로 걸어 나간다. 종종걸음으로 사우나로 뛰어간다. 사우나 문을 여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있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 모양이다. 어색한 침묵이 계속된다. 키가 작고 귀여운 외모의 여성 분이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건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아 네. 그쪽도??”

예상대로였다. 한국인들은 그 특유의 스타일 때문일까, 알아 채기 쉬운 것 같다. 그들은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교환 학생을 온 23살 대학생이라고 한다.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까지 반가울 줄은 몰랐다. 우리는 대학 생활, 취업, 연애, 친구 관계, 여행을 가본 나라와 가보고 싶은 나라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타지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난 반가움 때문일까, 처음 본 사람과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이 처음인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인스타 팔로우를 한다. 그러고서는 저녁 먹고 오로라를 보러 갈 때 함께 가기로 약속한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숙소로 간다. 사우나에서 흘린 땀을 시원한 물로 씻어낸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는 메뉴를 기대하며 식당으로 내려간다.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여전히 트리와 전구들 덕분에,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특유의 설렘이 느껴진다. 전구의 따뜻한 불빛에 기분이 좋아진다. 테이블마다 미트볼과 수프처럼 생긴 음식, 빵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오늘은 오로라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밥을 먹기로 한다. 호기심에 먼저 수프를 한 스푼 떠서 냄새를 맡는다. 생선 향과 향긋한 토마토 향이 섞인 냄새가 난다. 천천히 맛을 본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란다.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한 스웨덴식 매운탕 같은 맛이다. 달콤한 토마토소스에 매운맛과 생선 맛이 첨가되어서 시원하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생선 살이 식감을 더해준다. 같이 나온 빵을 수프에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다. 빵의 고소한 맛과 수프의 감칠맛이 잘 어울린다. 이번엔 미트볼을 붉은색의 소스에 찍어서 야채와 함께 한 입에 먹는다. 부드러운 미트볼 속으로 소스가 잘 베어 들어서 한 입 씹을 때마다 진한 토마토소스 맛이 난다. 두 음식 모두 토마토 베이스에 요리임에도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피시 수프는 조금 더 개운한 맛이라면 미트볼은 약간은 더 달콤한 맛이다.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아까 만난 한국인 대학생들에게 Dm을 보낸다. 우리는 7시에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숙소로 가서 옷을 단단히 입는다. 아비스코의 겨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추웠다. 해가 완전히 진 겨울이 되면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은 춤을 추듯 마구 흔들리고, 몸이 밀리기까지 했다. 목도리를 매고 한국인 대학생들과 만나기로 한 식당 앞으로 걸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만난 대학생 3명 중 2명이 온다. 그들은 한 명이 감기 기운이 있어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제 투어에서 갔던 호수로 가기로 한다. 해가 졌음에도 구름의 모양이 잘 보인다. 어제보다 별이 더욱더 선명하고 밝게 보인다. 마치 하늘에 커다란 보석을 박아 놓은 것만 같다. 큰 나무들이 모인 들판을 지나자 눈이 쌓인 호수가 보인다. 하늘을 보니 별과 구름이 보인다. 오로라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라의 흔적을 찾으려고 하늘을 둘러보다가 블러 처리를 한 듯이 뿌연 안개가 보인다. 무지개처럼 보이기도 하다. 점차 색이 진해지더니 핑크빛, 노란빛, 초록빛을 뿜어댄다. 태우가 놀라면서 말한다.

“저게 오로라야! 핑크색 오로라는 진짜 보기 힘든데....”

무지개 빛의 오로라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듯 우아하게, 또 때로는 격정적으로 춤을 춘다. 우리는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쳐다본다. 안개처럼 보이던 작은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 하늘을 덮는다. 우리는 수많은 별과 무지갯빛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눈밭에 눕는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온 세상이 별과 오로라로 가득 차 있다. 오로라가 마치 파도처럼 보인다. 조명을 받는 파도가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파도 속에서 멍하니 있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 하늘을 덮던 오로라는 핑크빛을 잃고, 초록빛만을 띈 채로 저 하늘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던 우리는 짐을 챙긴다. 오로라에 대한 감상평을 저마다 말한다. 다들 아직 오로라의 여운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그리워할 순간이겠다.” 태우가 말한다.

나도 그 말에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인다. 숙소로 돌아갈 때에도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본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아쉽다. 나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씻고는 침대에 바로 눕는다.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눈을 감았음에도 느껴지는 밝은 빛에 눈을 찌푸린다. 눈을 뜨기 싫다. 눈곱이 잔뜩 낀 것만 같다. 겨우 눈을 뜨자 붉은빛이 창문을 통해서 방으로 들어오고 있다. 커튼은 창문 끝 쪽에 붙어서 햇빛을 막아주지 않고 있다. 옆 침대에는 태우가 얼굴을 이불까지 올리고 자고 있다. 둘 다 잠에 빠져서 커튼을 칠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은 채로 창문으로 다가간다. 눈을 뜨자 어제보다 눈이 더 쌓인 듯한 드넓은 들판과 설산, 푸름과 붉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하늘이 보인다. 나는 잠시 동안 멈춰서 일출을 보다가 커튼을 거세게 치고는 다시 침대로 가서 눕는다. 11시에 알람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는다.

일어나 보니 11시 20분이다. 오늘은 아비스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야속하게도 오로라가 온 하늘을 뒤덮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마지막 날에 의미 있게 오로라를 보겠다는 나의 희망도 구름에 뒤덮였다. 우리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로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먹는다. 라면을 먹으면서 아비스코에서 무수히 봤던 눈과 눈에 덮인 나무들, 설산, 얼어붙은 폭포와 강, 순록, 스노모빌, 그리고 황홀했던 오로라를 떠올린다.

좋았던 기억들을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더욱 아름답게만 보인다.

라면에 즉석밥까지 돌려서 말아먹고는 침대에 누워 있는 태우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간다. 숙소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멍하니 쳐다본다. 자연은 아무 말 없지만 보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사람과는 달리 조용해서, 오히려 더 위로가 된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첫째 날에 스노모빌을 태워줬던 직원이 다가온다.

“한 번 더 태워줄게. 그때 약속 했잖아.”

나는 좋다고 말하고 직원의 뒷자리에 탄다. 스노모빌이 출발하자마자 아비스코의 차가운 바람이 온전히 느껴진다. 콧물이 계속 나지만 모자를 쓰지 않고 바람을 느낀다.

“시시해요 더 빨리!”라고 말하자마자 직원은 속도를 올리고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댄다.

바퀴로 인해서 튄 눈이 얼굴에 자꾸 묻는다. 직원은 나의 반응을 보려고 뒤를 돌아본다. 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아주 좋다고 대답한다. 괜히 도발했다.

몸을 숙여서 천천히 움직이는 스노모빌 위에서, 눈을 스치듯 만진다. 차가운 눈의 결정이 손 끝에 하나하나 닿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숙였던 몸을 일으켜서 눈 덮인 들판을 바라본다.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풍경이다. 아비스코에 온 이후로 이러한 풍경을 계속해서 봐왔다. 내 몸집의 5000억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설산과 청명한 햇빛이 비추는 하늘,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넓어지다가 결국에는 수평선과 만나는 광활한 들판까지. 그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는 느낌을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느낀다. 그럴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도 거듭해서 느낀다.

“초아악”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나는 스노모빌이 눈밭에 멈추는 소리를 듣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덧 우리는 숙소 바로 앞에 도착했다. 나는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스노모빌에서 내린다. 구름은 어느새인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해는 움직이는 구름에 의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숨기기를 반복한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숙소로 돌아간다. 방에 들어 가자 태우는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만 내민 채 누워 있던 태우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무거워 보이는 몸을 일으킨다.

“도훈아 마지막으로 사우나하러 가자.”

나는 당장이라도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마지막 날에는 왠지 특별하게 기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우나를 하기로 결정한다. 옷 위에 가운을 입고 방을 나선다. 숙소의 로비를 나서자 언제나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아비스코에서 있는 3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느꼈던 바람이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밖을 나가 보니 이미 해는 거의 지고 하늘은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다. 구름 때문에 일몰을 놓쳤다니. 마지막 날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든다. 눈이 발에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이려고 걸으면서 사우나로 향한다. 사우나 문을 열자 이탈리아 대학생들과 어제 함께 오로라를 봤던 한국 대학생들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들은 일제히 쳐다보고는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비스코에서 만났던 인연이 모두 모였다.

오로라 투어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파티라도 열라는 하늘의 뜻인가.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먼저 온 이들이 하던 대화에 끼어든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아비스코의 추억에 대해서 떠든다. 이렇게 먼 타국에서 만난 인연이 신기하다며 우리의 만남을 예찬하기도 하고, 서로의 나라에 놀러 가면 모이자고 말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땀이 비가 흐르듯이 뚝뚝 떨어지고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땀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인사를 하고는 먼저 사우나를 나온다.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한지 별이 보이던 지난날과는 달리 어둠만이 보인다. 마지막 날에 오로라를 보고 특별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아침부터 하늘에 잔뜩 낀 구름에 의해 무산 됐다. 아쉬운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아비스코에서 7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서둘러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챙긴다.

짐을 챙기고 키를 로비에 맡기자 오후 6시 20분.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급한 발걸음을 옮기며 기차 탑승장으로 간다. 탑승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이 캐리어나 가방을 들고 있어서 관광객처럼 보인다. 눈이 수북이 쌓인 들판 사이에서, 홀로 어떤 티끌도 하나 묻지 않은 듯이 보이는 철도를 타고, 기차가 탑승구로 들어온다. 기차가 내는 큰 소리에 사람들은 지쳐 있던 고개를 든다. 우리는 지친 몸으로 힘겹게 캐리어를 들고 기차에 탄다. 서둘러 자리로 가서 캐리어를 짐칸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진이 다 빠진 느낌, 아니 영혼까지 다 빠져나와서 아무 힘없는 몸 껍데기만 남은 듯하다. 의자의 오른쪽 손잡이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등받이를 눕힌 후에 눈을 감는다.

누군가가 코를 심하게 골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요란스럽게 이를 가는 소리에 의식이 든다.

“하 씨...”

욕이 혀까지 나왔다가 다시 목젖을 타고 저 멀리로 내려간다. 누가 내는 소리인지나 보자는 생각으로 한 없이 무거운 눈을 뜬다. 뜻밖에도 코를 고는 사람은 바로 앞자리에 있는 20대로 보이는 여자이다. 그녀는 담요를 덮고 좀비처럼 목을 비튼 채로 자고 있다. 나는 태우의 무릎을 넘어서 앞 좌석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 정도면 기차가 이 여자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흔들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웃긴 생각을 한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그녀가 몸에 덮고 있는 담요로 얼굴을 덮는다. 그녀가 코골이를 멈춘다. 다음으로 이 가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다. 이를 가는 사람은 대각선 좌석에 있는 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그의 앞에 서자, 그는 갑자기 이 가는 것을 멈춘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내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돌아선다. 태우의 다리 위를 조심히 건너서 의자에 앉는다. 잠이 바로 오지 않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기차는 언제나처럼 덜컹거리며 철도 위를 달리고 있다. 왠지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기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이 기차가 할 유일한 일이다. 우리는 기차가 그 철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서워하고, 그 철도에서 벗어나면 사고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뜨겁고, 매운 석탄 연기를 맞으면서도, 그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인가.

불쌍하네. 나는 자조적인 혼잣말을 내뱉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저 하늘 멀리서 흐린 안개 같은 것이 보인다. 눈곱이 꼈을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측으로 눈을 비벼 본다. 추측대로 눈에는 눈곱이 잔뜩 껴 있다. 나는 그것을 검지로 조심스럽게 빼낸다.

다시 창밖을 보니 여전히 흐린 안개 같은 것이 하늘 끄트머리에 피어 있다.

아비스코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저 뿌연 것이 오로라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졸음도 잊은 채로 하늘을 쳐다본다. 몇 분쯤 지났을까, 흐린 안개처럼만 보이던 것이 점차 초록빛을 띠더니 온 하늘로 자신의 빛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나는 반가움과 기대감이 충족됐다는 기쁨을 느낀다. 초록색의 선이 또다시 출몰했다. 내 여행의 마지막을 축하해 주려는 듯, 오로라는 자신의 선을 조화롭게 움직인다. 어느새 하늘은 약간의 붉은빛과 초록빛들로 가득 찼고, 그 사이사이로 별들이 박혀 있다. 나는 마치 내가 밤하늘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된 듯, 선처럼, 혹은 파도처럼 움직이는 오로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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