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그게 뭐라고.

by 이태헌

여름방학, 2-2학기, 겨울방학, 3-1학기까지 계속해서 행복한 꿈들을 꾸었다. 꿈은 나를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핀란드에 데려다주었고 거기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현실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 스웨덴에서 보고 싶던 오로라와 눈을 가득 채우는 별이 꽉 찬 밤하늘을 보기도 하고, 스위스와 핀란드의 아름다운 산맥에 걸터앉아서 현지인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했고, 스페인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현지인들과 수영 시합을 하기도 했다. 꿈속에서의 대학 생활도 계속되었다. 하윤이와 함께 하는 대학 생활은 항상 설레고, 항상 다음이 기대되었다. 하윤이는 착했고 나밖에 모르면서도 나의 시간과 친구들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손을 잡고 캠퍼스를 걸었다. 학교 축제에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불꽃놀이를 함께 보며 사진을 찍어 주고, 일본 여행을 가서 함께 라멘을 먹었다. 재밌는 영화가 개봉하면, 우리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꼭 함께 봤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말에는 아무 망설임 없이 함께 강릉을 가기도 하고, 천체 관측 동아리에 함께 들어가서 빛나는 별들을 눈에 가득 담기도 했다.

함께 학교 홍보 대사를 했으며, 홍보 대사 옷이 커플룩 이라면서 좋아하는 너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입시를 끝내고서 나도 꿈과 같은 대학 생활을 현실에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공부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 채로 임하는 입시는 버틸 만했다. 방학 동안 혼자 하는 공부도 할 만했다. 오직 나에게만 신경을 쓸 수 있어서 편했다. 개학하고서 2-2학기, 3-1학기도 꿈을 꾸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 경쟁을 이겨냈다. 나는 최종적으로 전교 3등이었고 아쉽게 한국대 학교장 추천을 받지 못하였다. 한국대 학교장 추천장은 전교 1등과 2등 자리를 지킨 박보경과 엄태구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대 학교장 추천장 자리를 따냈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기 이미 한국대 의대에 붙었다는 듯이 말해댔다.

때로는 내 앞에서도 대놓고 자신들의 기쁨을 열띠게 토로했다. 마치 내가 듣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새로운 담임교사는 2학년 때의 물리 교사이자 담임교사와 달리 나에게 잘해줬고, 나를 믿어줬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너의 노력이 정말 자랑스러워”

진정한 어른,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제자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응원해 주는 어른. 그와 반대로 2학년 때의 담임교사는 나를 못 마땅해했다. 자신이 부장 교사로 승진하지 못한 것이 내가 전교 1등을 차지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오늘은 딱 수능 100일이 남은 시점이다. 이제 딱 100일, 그리고 면접까지 다 끝내면 내가 그토록 바랐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학교에서는 이제 수시에 들어갈 3-1학기 내신이 끝나고 상위권들의 수능 최저 공부를 돕는다는 명목하에 1~4교시, 5~7교시까지 쉬는 시간에도 정숙을 유지하는 자습실을 만들었다.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만 갈 수 있었고 인강 등 학습을 위한 기기 사용 말고는 모두 금지되었다. 자는 것 또한 금지되었다. 코라도 골게 된다면 다른 학생들이 학습하는데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규칙들을 3번 이상 어길 시에는 퇴출이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칙들 때문일까, 아니면 수능이 100일 남았다는 압박 때문일까. 둘 중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습실 안에는 긴장감이 맴돌았고, 누구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사각사각대는 샤프소리와 삑삑 대는 빨간 사인펜 소리만이 자습실 안에서 울렸다.

30일이 지나자 자진 퇴출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났다. 대부분이 수능에서 기적을 쓰겠다고 큰소리치던, 수시를 챙기지 않은 정시 파이터들이었다. 그들을 따라서 자진 퇴출 희망자가 늘어났다.

계절은 더운 여름에서 시작해서 시린 가을을 지나 차가운 겨울에 다다랐고 수능도 다음날로 다가왔다.


*

드디어 수능 전날이다. 나는 내가 자주 틀리고 헷갈렸던 개념과 문제들만 모아놓은 노트를 천천히 훑어본다. 오히려 학교 시험 전날보다 마음이 편하다. 9시쯤 공부를 마치고 일찍 침대에 눕는다. 내일이면 힘들었던 입시가 끝난다. 3년 동안 인내하고 이겨냈던 날들의 축적물이 곧 세상에 나온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 없이 3년을 보냈고 내가 노력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나는 그것에 대해서 수긍하기로 결심한다.

수능 당일 날. 평소와 다르게 쉽게 눈이 떠진다. 핸드폰을 켜보니 6시다. 기지개를 켜고 창문을 연다. 기분 좋은 겨울 아침 바람이 나의 얼굴을 감싼다. 오늘따라 시원하게 느껴지는 햇빛과 새소리는 오늘 하루를 기대하게 만든다.

부모가 끓이는 소고기뭇국 냄새가 주방으로부터 내 방까지 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는다. 따뜻한 국물을 마신다. 소고기 뭇국의 따뜻한 국물이 추운 겨울의 아침 공기까지 데워주는 것 같다.

부모는 나에게 도시락의 구조와 어디에 어떤 음식을 넣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지만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뜨끈한 국물을 모두 마신다. 몸 전체가 따뜻해졌다. 마지막 남은 계란말이를 한 입에 넣는다. 입에 가득 찬 음식들을 씹으면서, 화장실로 향한다. 머릿속으로 각 과목의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는 건너뛴다. 수학 영역에서 쉬운 4점짜리 문제에 막혀 당황한다. 3초간 호흡하고 4초간 숨을 참고 다시 내쉰다. 차분하게 다시 접근한다.

샴푸를 씻어내고 수건을 꺼내서 온몸을 닦는다. 스킨, 로션을 바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언제나처럼 차에 탄다. 환기가 되지 않아서 답답하다.

창문을 열자 겨울 아침 공기가 불어온다.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뛰는 심장에 닿는다. 과열되어 있는 심장의 온도가 천천히 내려간다. 긴장이 풀린다.

시험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우리의 차량을 멈춰 세운다.

“수험생 차량이시죠?”

“네.”

“명훈고에서 시험 보시는 거죠?”

“네.”

우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모자를 쓴 경찰관을 쳐다본다.

“아 다름이 아니라 여기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안도한다. 우리의 차량은 유턴을 한 뒤에 대형 학원들이 자리한 건물 앞에 멈춘다.

“잘 봐. 무조건 해 내.”

“응”

나는 서둘러 내린다. 끝까지 부담스럽네. 나는 생각을 비우려고 한다.

차에서 내려 교문까지 걸어간다.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교문에 거의 도달하자,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여러 겹을 껴 입은 듯이 뚱뚱한 몸을 이끌고 걸어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저마다 각자의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다. 학교의 교문에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라는 글자가 쓰인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그 글자를 보자 약간은 두려운 감정이 들었지만 떨쳐 내려고 한다. 수험표에 적혀 있는 교실 위치와 자리 번호를 보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지나가는 길에 보인 교실 풍경은 정겨웠다. 3년 동안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교실이었지만,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듯싶었다. 열렬했던 사랑이 끝나는 것이든,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는 것이든,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과 작별하는 것이든, 항상 마지막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더 오래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겨울바람 때문일까, 생각에 잠겨서 학교 복도를 걷는다. 걷고, 걷고 또 힘차게 걷다 보니, 수험표에 적혀 있는 그 교실에 도착한다.

교실 안에는 학생들이 2명 정도 있다. 내가 들어오자 나를 잠시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이 가져온 교재로 다시 눈을 돌린다. 나는 내 자리를 찾고 앉는다. 맨 뒷자리였다. 학교에서 내신 시험을 볼 때도 맨 뒷자리였던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에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수없이 불안해했던, 그 모든 상상 속의 수능 날보다, 차분하다. 나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수능이 100일 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긴장하던 그때보다도, 전날에 노트 정리를 보던 때보다도, 부모가 수능을 잘 보고 오라고 응원을 한 아침보다도, 더욱 차분하다.

나는 감독관이 입실하기 전부터 수능 연계 교재만을 계속해서 읽는다. 시험지 배부 후 시작종이 치기 전에 하나의 글귀가 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라는 필적확인란 글귀이다. 무슨 의도로 이 글귀를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간절했던 나의 마음과 노력을 믿으라는 의미로 가슴에 다가온다. 국어 시간에 모르는 지문이 나와도, 수학 시간에 접근을 잘못해서 처음부터 풀어야 할 때도, 해왔던 대로 차분하게 나아간다. 스스로를 믿는다.

마침내 수능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료종이 울린다.

이제 막 끝났지만 벌써부터 자유로운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에 설렌다. 시험지와 OMR 검수를 모두 다 하고 이제 나가도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소리를 지른다. 핸드폰을 챙겨서 학교 밖으로 나온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끝났다고 전한 뒤, 데리러 오기로 한 장소로 뛰어간다. 차에 타자마자 부모는 예상했던 대로 시험을 잘 봤는지에 대해서부터 물었다. 서운함과 원망스러움이 한순간에 밀려온다.

그동안 수고 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 이런 말을 기대했던 내가 우스웠다.

“차분하게 잘 본 것 같아.”

짧게 말하고 이어폰을 낀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럼에도 수능을 끝낸 후련함이 훨씬 더 크다. 큰 짐을 덜어낸 기분이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온 내가 자랑스럽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 동안 보고 싶었던 예능 프로그램과 영상들을 마음껏 본다. 면접 준비를 할까 생각했지만 일찍 잠에 든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또다시 숨이 막힌다. 반 앞에 도착했을 때는 수능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다.

수능을 잘 봤는지, 최저는 잘 맞췄는지, 전교권들이 최저를 맞췄는지. 서로가 서로의 성적을 극도로 신경 썼다. 전교 1, 2등이 모두 의대 최저를 못 맞췄다는 소리가 들린다.

반에 내가 들어 가자 모두가 날 쳐다본다. 태우를 제외하고서는. 태우는 평소와 같이 책에 열중하는 모양이다. 태우는 단단한 바위 같다. 어떤 것에도 무너질 것 같지 않고,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 태우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나와 반대인 태우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었다. 멍 때리던 나에게 우리 반 2, 3, 4등이 다가온다. 나에게 의대 최저를 맞췄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저들은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거겠지.

“가채점 기준으로 지원한 대학 다 맞췄어.”

그들은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 창문 쪽으로 가서 수군거린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태우에게 다가간다.

“태우야 넌 졸업하고 뭐 할 거야?”

“난 글 쓰고 싶은데, 일단 군대 먼저 갔다 오려고. 가서 틈틈이 글 계속 써보고 공모전에 지원 많이 할 거야.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할 때 행복하거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야.”

내 감정에만 솔직한 거... 나는 지금까지 그런 적이 있었나?

담임교사가 들어온다.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 앉는다. 담임교사는 면접을 보는 학생들을 위해서 내일부터 봄 방학식 때까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순식간에 3학년 2반은 환희로 가득 찬다. 언제나처럼 나는 서둘러 교실을 벗어난다.

집에 돌아온 그날부터 1주일 동안 의대 면접 준비만을 했다. 제시문 문제를 풀고, 의사의 직업윤리 의식에 대해서 외우고, 의료계에 종사하려면 필요한 자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는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행복한 대학 생활에 대한 꿈만을 꾸었다.

나 자신보다도, 나의 꿈이, 내 욕망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면접 날 당일이 되었다. 왜인지 수능 때보다 더욱 떨렸다. 교수님들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준비한 대로만 한다면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가졌다. 면접장은 조용했고 긴장됐다. 저마다 자신이 준비해 온 답변을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는 것 같았다.

“또 경쟁이네..”

숨죽여 말한다. 그러다 문득 태우의 말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 그게 내가 지금 해야 할 유일한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다. 제시문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말한다. 3명의 교수들은 내 대답을, 단 한 번의 끄덕임 없이 가만히 듣기만 한다. 그리고 내 답변이 거의 끝났을 즈음에 시간이 끝났다면서 다음 면접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답변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한다.

다음 면접장으로 들어가니 한층 나긋해진 표정의 교수들이 있다.

의료 상황을 말하고,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 묻는다. 나는 그동안 배운 의사로서의 윤리 의식과 도덕적 책임을 바탕으로 모범적이라고 생각될 만한 답변을 내놓는다.

다음 면접실로 들어가자 푸근한 인상의 교수가 두 명이 있다. 마치 동네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서 약간은 긴장이 누그러진다. 면접장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자마자, 두 교수 중 한 명이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순간 당황한다. 지원동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섞어서 논리적으로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거짓으로 말하는 흔하디 흔한 답변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제 삶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좋은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의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저의 명예와 돈을 위해서, 온전히 저를 위해서 의사로서의 모든 윤리적 의무를 지킬 것입니다.”

답변을 들은 교수님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조교가 밖에서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렸고 나는 교수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면접장에서 나오니 긴장이 모두 풀리면서 몸에 있는 모든 힘이 빠진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첫 번째 면접에서 답변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나온 것도 마음에 걸린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걱정이 든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새로운 의학 기술을 연구하거나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포부는 없다. 내가 의대를 지원한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어딜 가던지 의사라는 이유로 존중받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모의 압박도 있었다. 이제는 자식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찾아본 적도 없기에, 그냥 사회의 룰을 따라가기로 했다.

면접이 끝나고 차에 타자 어김없이 부모는 나에게 면접을 잘 본 것 같냐고 묻는다.

“응”

단 한마디만 하고 이어폰을 꽂는다.

면접이 끝나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다 했다. 밤새서 드라마와 영화를 보았고 친구 집에서 자는 날엔 같이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 수능 성적표는 예상대로였다. 지원한 의대의 최저를 모두 맞췄다.

부모의 간섭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다 했다. 나는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불안에 휩싸이기보다는 처음 느껴보는 자유를 온전히 누리려고 노력하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이상하게 꿈도 꾸지 않았다.


드디어 첫 발표날이 되었다. 처음 발표가 나는 학교는 면접에서 정말 솔직히 말했던 그 학교이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학교이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면접에서 한 말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수험 번호를 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회를 눌렀다. 기대는 안 한다고 했지만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다. 조회를 누른 뒤 화면을 본다. 잠시 모든 사고회로가 멈춘다. 머리가 하얘진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파란색으로 쓰여 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해왔던 치열한 인내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울음이 절로 튀어나온다. 태우와 3학년 담임선생님, 친구 순으로 전화를 한다. 모두에게 축하를 받는다. 합격이라는 글자 하나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전화를 이리저리 돌린다. 앞으로는 경쟁 없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갈 자유를 얻는다는 생각에 설렌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면접에서 의사로서의 책임감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들은 교수가 왜 나를 붙였을까.

나는 모두가 겉으로는 책임감 있는 척, 선의에 가득 차서 행동하는 척하는 위선자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내가 돋보였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부모들이 집에 오자마자 나는 의대 합격 소식을 알린다.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들은 여기저기에 내 자랑과 의대생 자식을 키워낸 자신들의 자랑을 해댄다.

부모가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본 지가 오늘 이전에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봄 방학 날이다. 그토록 가기 싫었던 학교이지만 오늘과 졸업식이 학교를 갈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반에 들어 가자 태우를 비롯한 몇몇이 나에게 다가가 축하를 해준다.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나에게 큰 도움을 주시고 나를 믿어주신 3학년 담임선생님께도 고마움을 표현한다.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 돌아가 앉으려는 순간 2학년 때의 담임교사가 나를 부른다. 한두 번 정도 못 들은 척하고 자리에 앉아있지만 집요하게 불러댄다. 나는 결국 교실 밖으로 나간다.

“도훈아 합격 축하한다! 너라면 될 줄 알았어. 우리 학교에서 이번에 한국대 의대 간 건 너밖에 없대. 박보경, 엄태구 얘도 의대 다 떨어졌단다. 대단하다 도훈아.”

“아 네.”

또 비교질이다. 누군가의 좌절을 자신의 업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로 아는 피라미들. 박보경과 엄태구도 같은 부류이다. 환멸감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기쁨이 밀려온다. 나는 그들을 앞질렀고, 그들은 지금 나보다 아래에 있다. 이제 그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누구보다 남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사실은 그 비교질을 가장 심하게 한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깎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서둘러 반으로 들어간다. TV에서 나오는 방학식이 끝나고 나는 교실을 나와 집으로 간다. 오늘부터는 온전히 나를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젠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택시를 부르지 않고 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마지막으로 탄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보는 학교 앞 풍경은 정겹고, 떠나지 않았음에도 그립다. 삶이 이토록 여유로운 것이었나. 버스에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는다. 겨울의 햇빛은 눈을 닮은 흰색이다. 버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집으로 향한다.

집 앞 정류장에 내리자, 학생들이 버스로 우르르 몰려온다. 앳된 얼굴과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모습이 예쁘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미리 시켜 놓은 배달 음식을 뜯으면서 넷플릭스에서 볼 것을 찾는다. 이제는 2시간 30분짜리 영화도 요약본으로 보거나, 2일에 걸쳐 나눠 보지 않고 한 번에 볼 수 있음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집중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메신저 알림음이 뜬다. 영화를 멈추고서 보니 태우이다.

“도훈아 같이 여행 갈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하지만 나는 금세 설레기 시작한다.

친구랑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라니, 이제는 내가 곧 성인이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좋아. 그러면 스웨덴 가자. 유튜브 영상으로 스웨덴 오로라를 봤는데 진짜 예쁘더라.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사실 꿈에서 봤던 오로라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언젠가는 한 번쯤 실제로 보고 싶었다. 우리는 만나서 여행 계획을 세우기로 약속한다.

전화를 끊는다. 설레는 마음에 보던 영화를 멈추고 오로라 영상을 찾아본다.

꿈속에서 봤던 오로라가 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다. 흰색 성당 위로 펼쳐진 광활한 검은 하늘, 그 사이사이를 수놓은 에메랄드 빛 오로라는 내 심장을 뛰게 한다.

면접이 끝난 날부터 오늘까지 꿈을 한 번도 꾼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었던 꿈의 내용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야 무엇이든지 나는 그 꿈들 덕분에 힘든 현실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꿈과 대비되는 현실에 더욱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 꿈이 언젠간 내 현실이 될 거라는 생각에 버텼다. 마침내 그 꿈들을 하나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여행 날짜는 졸업식 바로 다음 날에 출발해서 4박 5일 동안 머물고 오기로 했다. 내 인생은 바로 오늘부터 꽃피우는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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