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때부터, 그니까 유치원 때부터 부모에 의한 삶을 살았다.
그 삶의 첫 번째 단계는 나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으로 포장한 세뇌를 받은 나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리, 그 말을 잘 따랐다. 나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엄격하고, 무서웠다. 나는 대치동의 여느 평범한 아이들처럼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
기록을 보니 나는 아마 4살 때쯤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녔던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 나는, 한국말도 완전하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한국어로 글씨를 완벽하게 쓸 줄도 몰랐고, 맞춤법도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나중에 의대 입시를 할 때 도움 된다는 말을 듣고서는, 나를 그 어린 나이에 영어 유치원에 보냈던 것이다. 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예 고려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영어 유치원 다니고 싶어?”라고 물어보기는커녕
어느 날씨가 더운 날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면서 그 영어 유치원에 데려갔다.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아니면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세뇌받으면서 커서 그랬을까. 나는 싫다는 말 한마디도, 아니면 보통의 꼬마애들처럼 떼쓰면서 울지도 않았다. 영어 유치원은 몸집이 작았던 나에게는 커다랗고 하얀 성처럼 보였다. 최근에 지어지는 보통의 건물들과 같이 고급져 보이는 흰색의 벽과 호텔을 연상케 하는 조명, 큼지막한 자동문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절대 4~7살짜리 꼬맹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래도, 꽤 희망에 차 있었다. 아마 이렇게 좋은 유치원에서 좋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영어 유치원의 선생님은 모두 한국어를 잘하는 원어민이었다. 한 명은 연한 금색 빛의 머리와 푸른빛 눈, 살면서 햇빛을 한 번도 보지 않은 것 같은 하얀색 피부. 크고 푹 들어간 눈과 깊은 쌍꺼풀, 그것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약간 튀어나온 이마는 나에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 내가 그녀를 지금 봤다면 반지의 제왕에 나온 ‘엘프’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영어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외국인 특유의 어눌한 발음과 억양이었지만 자상했고, 따뜻했다. 그녀는 유치원의 경쟁적인 시스템에 반대한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내가 6살 즈음에 유치원을 그만뒀다.
아마 유치원의 운영 방식에 저항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21세기에 이런 독재가 있을 수가.
또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푸근한 인상의 남자였다. 특유의 갈색 빛깔의 뽀글 머리는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곰돌이 푸를 닮은 푸근한 외모와 어울리게, 인내심이 아주 많았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다고 유치원 교재를 던졌을 때, 그는 유창하지만 왠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한국말로 그 아이를 달랬었다.
“책 던지는 거 나빠. 나쁜 일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거야. 그러면 안 돼. 엄마, 아빠한테 혼나.”
아이들은 그의 한국어 억양을 좋아했다. 오히려 저렇게 어설프게 말하는 한국어가 어린아이들이 알아듣기에는 더욱 쉬웠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놀다가 식판을 엎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은 아이의 볼에 묻은 짜장 소스부터 닦고는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남한테 피해 주면 안 돼. 이렇게 식판 엎는 것은 남한테 피해 주는 거야.”
그때 배웠던 것들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아마 아주 기초적인 알파벳을 먼저 배웠겠지. 그리고 apple, stone, lion과 같이 아주 간단한 단어를 배우고 점차 난이도를 높여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쯤에 영어로 대화하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기억하기 싫지만, 아주 어릴 때의 일이지만, 잊어버리고 싶지만 가장 기억이 잘 남는 그런 기억이다.
영어 유치원에서는 매주 한 번씩, 혹은 많으면 2번에서 3번씩 작은 테스트를 봤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큰 테스트를 봤는데, 그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서 반을 구분해서 수업했다. 나이는 상관없었다. 나이가 어려도 테스트의 결과가 좋았다면 더 높은 수준에 반에 편성되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애보다 낮은 수준의 분반에 들어가게 된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좌절하고, 분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영어 유치원의 시스템은 꽤 경쟁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수준별 수업을 한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는 꽤 흥미가 끌리는 시스템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간의 경쟁을 통해서 성취욕을 느낄 수 있고, 경쟁심 때문에 공부를 더 열정적으로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리라. 자신의 아이가 높은 수준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하고.
당연히 나의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영어 유치원을 들어가서 처음 본 테스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분반에 들게 되었다.
주변 아이들이 나에게 표현하는 부러움과 존경, 유치원 교사의 인정, 그리고 부모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나를 기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시험에서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고 중간 수준의 분반에 들었을 때, 그때의 부모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유치원 교사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는 처음에는 허무하고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큰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렸던 나는 그것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단지 부모의 눈빛이 무서웠을 뿐이다. 그 이후로 부모의 간섭이 더욱 심각해졌다. 유치원 교사에게 매일 확인 문자를 보냈고, 내가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나에게 숙제가 있는지 물었다.
내가 6살 때쯤이었을까, 부모가 한 젊은 남자를 데려오면서 ‘선생님’이라며 소개했다. 그 선생님은, 6살인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어려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펌이나 염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듯한 머릿결의 바가지 머리, 매일 매고 다니는 검은색 백팩, 매일 입고 다니는 청바지, 후드티와 가끔 꾸미려고 입는 청자켓은 유치원생이 보기에도 어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그의 바가지 머리는 무언가 순수한 인상을 주었다.
그 젊은 남자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나는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유치원에 선생님이 있었는데 또 다른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부모는 유치원에 있는 선생님과는 다르게 수학을 가르쳐 줄 거라고 했다. 그 선생님은 매주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는 2시간 동안 방정식이니, 가분수니 뭐니 등을 알려줬다.
그 내용을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선생님의 노력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재밌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부모가 나를 벌주려고 새 선생님을 구해온 것만 같았다.
내가 영어 유치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벌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뒤, 나는 영어 유치원에서 본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다시 높은 수준의 분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수학 선생님은 계속해서 우리 집에 찾아 왔고 수학이라는 것을 가르쳐 줬다. 아쉽게도 수학 선생님이 부모의 단발적인 ‘벌’은 아니었다.
나는 지루한 수학 수업을 견뎌 내기 위해서, 그 젊은 수학 선생에게 수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어디 대학 다녀요?”
“선생님은 여자친구 있어요?”
“선생님 몇 살이에요?”
“선생님도 어릴 때부터 학원 다녀서 의대 간 거예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니. 난 중학교 때부터 학원 다녔어.”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약간은 억울했다. 의대를 가려면 반드시 학원에 일찍부터 가야 한다던 부모의 말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나는 그 이후로도 괴롭고도 지루한 수학 수업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수많은 질문을 했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영어 유치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실수인 척하면서 일부로 식판을 바닥에 떨어뜨린다거나, 유치원의 물건을 실수인 척 일부로 집에 가져온다거나 하는 다소 사소한 것이었다.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왠지 사고를 치고 싶었고, 남 모르게 무언가를 깨뜨리고 싶고,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유치원에서 종이를 나누어 주면 실수인 척 일부로 찢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꽤 상쾌했고,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야만 계속 영어 유치원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 유치원에서는 나와 친구들의 이런 소소하고 즐거운 사고를 부모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 영어 유치원에서도, 부모의 귀에 부정적인 소식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 점이, 그니까 우리들의 사고가 부모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고 치는 것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나는 점차 사고를 치는 빈도를 줄여 갔다.
영어 유치원을 다닌 지 약 2년쯤 됐을 때 영어가 국어보다 더 익숙했다. 영어 유치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를 공부하는 데에 보냈고, 그렇다 보니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한글로 글을 쓰는 것보다 편해진, 꽤 모순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혼란이 오기도 했다. 영어가 더 편하다고 느껴지다 보니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한국인인데 왜 외국어를 더 중점적으로 배우는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
친구들과 놀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을 때,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가면 괜찮겠지, 선생님과 부모님이 말한 대로 좋은 의대에 가면 남들에게 인정받으면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돈도 많이 벌겠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지. 의대에 가면, 힘들 때 서로 위로해 주고, 같이 뭉쳐서 공부할 수 있는 동기들을 만나겠지. 진짜 친구는 그때 사귀어도 좋아.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아주 밝은 빛에 눈을 뜬다. 눈앞에 있는 큰 나무에는 벚꽃이 만개해 분홍빛을 띠고 있고,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지금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 한 명이 아니다. 6명이 있다. 그들은 모두 맞춘 것처럼 같은 점퍼를 입고 있다. 나도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곧바로 그 옷들이 과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6명 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 시끄러운데 잘 자더라. 우리 수업 안 가고 한강 갈 건데 너도 갈래?”
6명 모두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보고 있다. 6명은 모두 나를 알고 있는 눈치이고 우리는 대학생인 듯하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라니.
“당연하지 이렇게 날 좋은 날에 수업을 왜 가냐.”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롭던 순간이다. 수업을 들을지 말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우리는 돗자리를 정리하고 손에 짐을 가득 들고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한강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우리 과 최초의과 CC인 연주와 선준이의 설레는 러브스토리부터 미팅 나가서 개그만 치고 왔다는 민지, 좋아하는 선배를 어떻게 꼬셔야 할지 물어보는 서윤이, 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다시 사귀고 싶어 하는 재민이, 그리고 그런 얘기들을 흥미롭게 듣는 나와 하윤이까지.
우리는 사랑과 웃음, 설렘을 가득 태운 지하철을 타고 한강으로 갔다. 이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 생활이라면 그 힘든 입시 생활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찬란한 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2년여의 입시 생활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강은 평일 4시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정말 파랗다. 푸른 하늘과 구름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나의 기분도 좋아진다. 돗자리를 들고 다니면서 앉아 있을 자리를 찾는다. 나무 아래에 그늘이 있는 곳을 찾고 다 같이 달려가서 돗자리를 핀다. 신나는 노래를 틀고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마음껏 수다를 떤다. 아까 못한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부터 이상형이 뭔지, 옛날에 했던 연애 중에서 좋았거나 나빴던 점들은 무엇인지 등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다들 사랑에 굶주린 듯 계속해서 말을 뱉어낸다. 벌써 6시가 되었다. 해가 천천히 내려오면서 하늘과 강, 나무들을 붉게 물들인다. 햇빛을 담고 있는 한강 물이 아름답다. 일렁이는 한강물을 따라서 빛도 함께 움직인다.
“이제 슬슬 해도 지는데 술이 빠지면 안 되겠지? 소맥 먹자.”
과에서 술고래로 유명한 연주와 선준이 커플이 우스꽝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소리 없이 웃는다.
“얘네 또 시작이네. 하긴 너네 커플이 술 안 마시는 게 이상한 거지.”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술 사 올 사람을 정하기로 한다. 다들 진심으로 가위바위보를 이기고자 한다.
한 순간에 승패가 결정 났다.
절망과 환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나와 하윤이가 걸렸다. 겉으로는 아쉬운 척, 귀찮은 척했지만 하윤이가 같이 간다는 것을 알고 괜히 마음이 설렌다. 하윤이는 내 이상형에 가까웠다. 하얗고 뽀얀 피부에 작은 얼굴, 귀여워 보이는 선한 눈과 작지만 오뚝한 코, 아담한 키까지. 정말 내가 바라 왔던 이상형이었다.
하윤이와 같이 편의점으로 가는 동안 약간은 긴장되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어색하게 걷는다.
약간은 긴장되는 그 침묵을 먼저 깬 쪽은 하윤이었다. 하윤이는 나랑은 이렇게 둘만 있는 건 처음인 것 같다며 더 친해지자고 말한다. 나는 좋다고 했고 실제로도 좋았다.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취미라던가, 하고 싶은 동아리가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는 모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었고 비빔면과 냉면을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취미도 책 읽기, 영화 보기, 글쓰기, 운동하기가 공통되었고 똑같이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까운 미래에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얘기를 하다 보니 편의점에 도착한다. 하윤이가 어떤 술을 사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나는 몰래 하윤이에게 줄 숙취해소제를 산다. 술과 과자 안주를 사고서는 편의점을 나온다.
어느덧 해는 거의 수평선 너머를 향해 가고 있었고 주변은 어두워져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가까이 붙어서 걷는다. 서로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나는 하윤이에게 조금 더 붙었다. 발그레한 하윤이의 볼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윤이의 뒷목에서 어렴풋한 향기가 풍겨온다.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 뒷목을 보자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만 같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친구들이 보인다. 배달 음식을 시킨 듯 보인다. 친구들은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댄다. 돗자리가 있는 자리로 거의 다 왔을 즈음에, 하윤이는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나 사실 너 처음 보고 잘생겼다고 생각했어”
나는 당황해서 멈춰 선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하윤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빨리 오라고 한다. 나는 웃음이 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친구들도 무언가 이상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나에게 무슨 좋은 일 있냐면서 집요하게 물어댔다. 나는 날씨가 너무 좋고,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고 핑계를 댔다. 하윤이는 그 말을 듣고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는 술을 따르고 정신없이 술을 마셔 댔다. 술 게임을 잘하는 연주 선준 커플이 다른 친구들에게 술을 먹여댔다.
다들 주변에 피해가 갈까 봐 목소리를 낮춰서 술 게임을 했는데 오히려 웃음을 참으려 하니까 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윤이는 계속해서 웃어댔다.
“웃는 것이 참 예쁘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술을 마셔서인지 아니면 잘생겼다는 말에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나는 하윤이에게 귓속말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했다. 하윤이는 좋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우리는 또다시 편의점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나는 하윤이의 얼굴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하윤이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눈길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정말 완벽한 내 이상형이었다.
“너무 예쁘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하윤이는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은 듯이 환하게 웃었다.
“너도 잘생겼어.”
또다시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귀자 나랑. 내가 앞으로 더 설레게 해 줄게”
하윤이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너무 놀라 말을 더듬는다.
“얼른 말해봐. 10초 줄게. 10.. 9... 8... 7...”
“좋아 사귀자.”
계속해서 웃음이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쳐다만 보는데도, 웃음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의식이 든다. 아쉬움에 다시 잠들려고 노력한다. 다시 눈을 꽉 감은 뒤에 잠에 들려고 노력하지만 어김없이 들려오는 부모의 잔소리에 눈을 감고 식탁으로 나간다.
언제나처럼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 오늘 꾸었던 꿈을 계속 이어 꾸고 싶다. 시간이 지나 나에게도 꿈같은 대학 생활이 펼쳐지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를 버틸 각오를 한다. 오늘은 드디어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자 여름 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정오표를 받아서 원점수를 알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등급이 나오는 중요한 날이다. 예상대로 등급이 나오길 바라면서 학교로 향한다. 부모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 성적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반으로 들어 가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바로 느껴진다. 모두들 오늘 성적표가 나오는 것을 안 건지 긴장감마저도 느껴진다. 어떤 애들은 교사들한테 들었는지 수학은 몇 점까지가 1 등급 이래더라, 박보경과 엄태구 둘 다 2과목 빼고 다 1 등급 이래더라 등등 벌써부터 등수에 관한 소문이 떠돈다.
나는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해맑고 예쁘게 웃던 하윤이를 생각한다. 꿈에서 깨어난 뒤부터, 끊임없이 하윤이가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잔잔한 노래를 틀고 책상에 엎드린다. 누군가가 뒤에서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나는 또다시 꿈을 꾸고 있나 싶어서 서둘러 돌아본다. 담임교사다. 김이 팍 식는다. 담임교사는 평소와는 다르게 웃고 있다. 손짓으로 따라 나오라는 제스처를 한다. 그 순간 내가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나는 담임교사를 따라서 1층 강당으로 간다. 그곳에는 ‘1학기 성적 최우수자 장학금 수여식’이라고 적혀 있다. 그곳에는 1학년 통합 1등을 했던 박보경이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불안감, 짜증이 공존해 있다. 나와 박보경, 그리고 각종 봉사상과 선행상, 전교 회장 위임장을 받을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먼저 성적 장학금 시상부터 한다. 나의 이름이 먼저 불리고 박보경의 이름이 불린다.
“성적 최우수상 이도훈. 위 학생은 교과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바르며 매사에 솔선수범하여 타의 모범이 되므로, 장학금과 함께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창의고등학교장 박창민”
강당에 있는 모든 교사들과 학생들이 박수를 친다. 기쁘지 않다. 단지 이 불편한 경쟁이 서둘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성적 최우수상 박보경.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위와 같습니다.’ 앞에서 한 번 말한 내용이기에 생략한다는 의미이다.
그 말을 들은 박보경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다. 자신이 무시받는다고 느껴서일까, 자존감이 상한 듯이 보인다.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웃고 있는 담임교사의 표정이 보인다. 그리고 그 담임교사를 보는 동료 교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부장 교사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반에서 인재를 배출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이 보인다.
또다시 속이 메스껍다.
그 후로 다른 상들이 차례차례 시상된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박보경이 나에게 성적을 물어온다. 2학년 1학기이지만 그와는 처음 말해보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 말을 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물리 한 과목 빼고 다 1등급이야”라고 짧게 말하고 바로 반으로 돌아간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뒤에서 말이 나올 것 같아서 2등급인 과목까지 말해준다. 시상식이 끝나고 교가를 부르는 걸로 방학식이 끝난다. 나는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학교를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