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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의 일기

사람은 그 만의 시간과 삶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사람들이 입다가 무심코 버리는 옷들로 작업을 하다보니 그 옷들에 누군가의 따뜻함이나 이야기가 묻어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 중 이번 작품들은 여성의 시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수십 년 전 특별한 날에 입었던 옷들, 한때는 축하의 자리, 기념의 자리를 함께했던 것들. 난 그 옷들과 폐천들을 잘라서 그들의 시간과 삶을 담고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실뜨기, 매듭짓기, 뜨개질, 머리 땋기처럼 단순한 작업의 행위는 내 작품에서 여성의 반복된 삶의 행위, 그러나 연결되고 이어져 삶은 다시 이어짐을 뜻한다. 서로 연결된 이 줄의 구조는 다음 연결될 무엇인가와 맞닿아 계속된 새로운 구조와 공간을 생성한다. 이 이어져 있음은 나 또한 누군가와 연결되었음을 알려주어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면 왜 여성의 옷인가?

그건 여성의 삶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 대가족으로 살아온 나는 여성의 지난한 삶을 무수히도 많이 듣고 보았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기에 겪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특별한 시간을 보냈고 의미를 가졌다. 물론 삶의 고달픔과 즐거움이 반드시 여성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책무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옷들을 가위로 성큼성큼 자르고 다시 땋아서 연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어지러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여성의 고된 시간을 이어주는 행위로 가치를 갖는다. 여성은 여성들로 연대 되었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연결되었다. 그 연결의 행위는 그녀들의 삶을 보상하는 위로와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 ‘정희의 일기’는 여성의 시간과 이어짐의 위로를 의미한다. 특히 나의 정희 이모가 30년 전 입었던 옷과 그보다도 더 오래전 결혼식 때 입으셨던 옷들을 조심스럽게 자르며 이모의 삶에 더해진 무게와 인간의 창조적 생산들을 생각하였다.

그 외에도 엄마의 특별한 치마를 비롯해 가까운 이들의 버려진 옷들, 내가 결혼식 날 입었던 예복이 더 이상의 쓸모는 없으나 또 다른 가치를 지니며 새로운 작업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다. 마치 몸과 마음속의 내용물이 뒤섞여 나오고 흘러내리거나 식물처럼 자라 새로운 삶으로 이어져 새 살을 돋는 듯하다.


그녀들을 감싸던 그 옷들이 누군가를 위해 쓰였고, 누군가는 따뜻해졌으며 버티어왔다. 그 인간의 관계를 버려진 천과 옷들로 고민하며 여성, 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그려본다.     


이 시대의 ‘정희’들은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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