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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May 23. 2024

오키나와에서 맥도날드

여행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이고 싶은 마음

오키나와사람들은 대게 여유롭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행동도 모든 면에서 여유롭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나는 느린 인간이었지만, 오키나와에서 만큼은 아니다. 실컷 내 느림을 받아들이고 행동해도, 모두가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서 만큼은 일반적인 사람이다. 여유는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닌 ‘공백(空白)’ 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내 일상 모든 곳에서 여유로 채워져 있어 ’조급함‘의 마음이 들어 올 자리가 없도록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힘껏 여유라는 공백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상을 공백으로 채워 여유라 부른다. 여행에 온 이상 특별한 걸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하고 일상적으로 자주 먹는 걸 먹기로 했다. 그리고 애당초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한계였달까.


나의 최애 메뉴는 ‘눅눅해진’ 맥도날드 감자튀김이다. 꼭 눅눅해야 한다. 유레카!! 5월 말미의 오키나와는 습해서 아주 쉽게 감자튀김이 눅눅해졌다. 눅눅한 감자튀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센 비로 인한 습도는 아주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후였다.


내가 오키나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 아니 이게 가장 큰 이유다. 빈티지/구제샵. 오키나와의 구제샵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옷뿐만 아니라 다양한 컵, 식기 등등 뭐 하나 거를 것 없이 보물이 가득한 보물 창고 같다. 옷장의 절반 이상이 빈티지샵에서 구매한 제품이고 옷을 사랑하는 나에게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난 빈티지라는 말이 좋다. 헌 옷, 헌책 등등 누군가 사용했었던 물건이지만 충분히 사용가치가 있는 보물들을 찾는 걸 좋아한다. 빈티지샵에 갈 때면 마치 내가 해적왕이 된 듯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보물을 수집한다. 단, 나만의 조건이 있다. 빈티지에 프리미엄을 붙이는 건 사치다. 지구 위해서도 꼭 업사이클이나 빈티지샵을 이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빈티지에 프리미엄을 붙여 ’ 빈티지가 오히려 더 비싸다 ‘ 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면 대중성을 잃어 꽤나 곤란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헌 책방에서 오키나와에 관련된 책이 나열된 구역에서 한참 책을 골랐다. “오키나와에서 살다”라는 제목의 책인데, 오키나와 역사 사진집 형식의 책이었다. 명소 관련 책자를 찾고 있던 나에겐 맞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평생 마음에 두고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사진으로라도 남겼다.


구제샵 중심엔 오키나와에서 제작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알 수 없고, 용도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쓰임이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컵들을 보며 행복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든 면이 같은 컵이 아닌 어딘가 투박하고, 컵 바닥 부분에 제작 과정이 고스란히 보이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컵들이 좋았다. 눈에 띄는 몇 개를 골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귀가 길에 마트를 들려 보니, 입구엔 처음 보는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살면서 별별 과일은 다 먹어봤다고 자부했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갈 과일이 아직도 아주 아주 많을 걸 생각하니 아찔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선 꼭 먹으리라. 여전히 식욕이 부진하기에 꼭 배가 고플 때, 다시 찾아오려고 사진으로 남겼다. 이야기가 여기저기 난무하게 튀어버렸지만 그냥 이대로 두려 한다.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걸 설명하며 횡설수설하는 사람으로 귀엽게 넘어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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