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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May 23. 2024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인생상담받은 나는 럭키비키걸

오키나와 사람들이 준 위로의 말들

오키나와 여행을 가기 전 그리고 여행 중 우연히 운명처럼 연이 닿은 사람들에게서부터 뜻밖의 위로를 많이 받았다.


서울에서 만난 오키나와 친구

퇴사가 결정되던 날, 몸도 정신도 온전히 못한 채 집에 돌아가기도 싫어서 아무 곳이나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홍대입구역 쪽에 위치한 빈티지샵 스윙잉 서울을 가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5호선을 타고 있던 나는 멍하게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린 후 도착한 역에서 반대로 가는 전철을 타려면 계단을  올라야 했다.


큰 캐리어에 짐을 잔뜩 들고 핸드폰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듯 보이는 동양인 한 명이 보였다. 사람들이 계속 무시하고 지나가는듯하는 모습이 당일의 나와 너무나도 닮아서 그 사람을 두고 갈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언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네 개 중 하나는 하겠지 싶은 마음에 그 사람한테 도와드릴까요 라며 중국어로 질문했다. 그 사람의 당황하는 눈을 보고 바로 일본어로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그제야 안심한다는 듯이 자신이 지갑을 두고 왔는데, 전철을 잘 못 탔다는 것이다. 급하게 친구한테 현금을 빌렸는데, 그곳까지 가는 전철을 잘 못 탔다고 했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아 나도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쉴 새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곧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고 말한 순간 상대가 깜짝 놀라 나도 놀라버렸다.


그는 오키나와 출신이었다. 한국에서 지나가며 우연히 도움을 준 사람이 오키나와 출신일 경우는 몇이나 될까? 오키나와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국 거리를 소개해주고 문화를 알려주고 같이 삼겹살을 먹었다. 만난 순간부터 전철이 끊기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 친구는 도쿄에서 헤드헌팅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10년 만에 만나는 사이같이 장난치고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눠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보다 연장자였기 때문에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었다. 그날 나에게 가장 힘든 날일 거라 예상했지만, 그 친구 덕분에 재밌는 추억이 생긴 날로 기억되었다.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도 전하니,  잦은 면담과 퇴사 결정으로 내가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을 것 같아 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 친구와는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 좋은 친구가 생겨서, 인생이란 가끔 정말 엉뚱한 인연이 시작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오랜 기간 서로를 지켜봤다고 해서 속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며 처음 봤다 해서 그러지 못할 것도 없다는 걸 그리고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은 조금은 더 따듯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오키나와 빈티지샵 지점장 친구

오키나와를 사랑하는 이유는 빈티지 천국이라는 점. 그리고 사실 일본은 어디에서나 빈티지문화가 근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대형 쇼핑몰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이토준지 팝업 스토어를 보려고 어슬렁 거리다가 우연히 들린 빈티지샵 지점장님이랑 대화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 스타일 자체를 칭찬해 주셔서 얼떨떨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사실 운동복 입고 있어서 머쓱한 마음이 컸다. 웃긴 이야기지만 처음 본 손님과 지점장이랑 1시간을 옷도 안 고르고 떠들었다면?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인 건지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나중엔 인스타그램도 교환하고, 옷에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같이 일해보자는 쪽으로 말을 해주고, 의류 사업 관련해서 조언도 많이 해줬다. 이런 우연의 우연이 겹칠 수 있을까? 하늘이 모든 사람들을 준비해 준 듯이 이번에도 난 오키나와에서 위로를 받는다. 이곳 사람들은 따듯하다.

빈티지샵에서 산 모자

유랑자로 살아오며 처음으로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굳게 생겼다. 그리고 그곳은 오키나와 일 것이다. 나의 나라인 한국과 자란 중국, 일본 사이에 딱 위치해 있다. 모든 언어가 다 통한다. 이곳에 있으면 통하지 않는 언어가 없다. 모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언어의 장벽이 아예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운명적 우연들이 지친 내 마음을 너무나도 크게 위로해주었다.


연이 생긴 사람들과의 이별은 아쉽지 않았다. 곧 볼 것 같았다. 곧 다시 이곳으로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쉬운 안녕이 아닌 다음에 보자는 의미를 담은 중국어 작별 인사 再见 을 일본어로 외치며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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