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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Jun 01. 2024

이건 사랑이 아니고 완벽한 존경, C에게

하마터면 사랑이라 착각할뻔한 친구가 씀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장마 기간인걸 잊은 채 덜컥 다녀온 여행이었다. 사실 애초에 요양 차원에서 휴식을 취하러 간 거 여서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래도 바다가 보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의지는 남아있는 터였다. 그곳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C는 여행사 스태프로 나는 관광객으로 스노클링을 하는 날이었다.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대만인 그리고 그와 같이 말하는 한국인. 나이는 1살 차이, 일본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편하게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다.


안녕,

만약 내가 이 편지를 너에게 보낸다면, 그때엔 네가 모든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일본어나 중국어로 보낼게. 하지만 아직은 내가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낼 확신이 안서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그리고 그 사랑하는 바다 한가운데서 널 알게 돼서 기뻤어. 네가 대만인이라고 자길 소개하기 전까지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 말하기 전까지 서로 일본인이라 생각하던 우리가 웃겨. 넌 정말 똑똑하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친구야. 그리고 신기했어. 평행 이론처럼 나와 비슷한 친구가 존재하는구나, 빈티지 옷이랑 책을 그리고 바다와 일본을 좋아하는 네가 나와 비슷해서 신기했어.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다시 만나면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재즈바에 너를 데리고 갔을 때, 관객이라곤 너와 나밖에 없었잖아. 그저 친구 사이인 우리를 보고, 연주자들이 다음곡으로 ‘LOVE’를 보사노바형식으로 부른 게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어. 사실 내가 그 재즈바에 너를 데려간 이유는 타지에 혼자서 일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네가 혼자 그곳에 남아 재즈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사실 라이브 재즈바에 가면 대화를 안 하게 돼서, 데려가고 싶은 사람 이외엔 굳이 누군가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


  그곳에서 라이브 재즈연주를 듣다 보니까, 순간 사랑이란 감정이라고 착각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져서 정신을 번쩍 차렸어. 그때 마시던 롱아일랜드아이스티는 내가 마셔본 것 중 단연 최고였어. 난 그다지 낭만적인 인간은 아닌가 봐. 참 낭만적인 사람으로 느끼는 감정 그대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내 이성이 날 아주 잘 잡더라. 아마 너랑 난 아주 많이 닮았지만, 결이 비슷하지만 색깔이 다른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넌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그런 네가 부러워.


여행을 다녀오니, 내 이성이 틀림없이 맞았다는 걸 연신 느꼈어. 너한텐 나중에 이런 말은 하지 않을게. 사랑과 존경은 한 끗 차이래. 사랑은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은 거고, 존경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거라더라. 아마 내가 느낀 감정은 존경에 가까웠나 봐.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도전하는 네가 내 눈엔 내 꿈을 이룬 모습으로 비쳤던 거 같아. 잠시 착각할 뻔했지만, 분위기를 안 타서 정말 다행이야. 너도 그랬길 바라.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란 친구를 만나 반가웠어. 그리고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내가 너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 대답했던 거. 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거든,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는 네가 목표로 하는 꿈의 모양이 낭만적이더라. 난 여전히 어떤 사업을 해볼까, 어떤 공부를 할까, 어떤 일을 하며 견문을 넓힐까 등등 이런 생각하는데 말이야. 네가 한 말은 아마 영원히 잊히지 않을 거야. 나도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그런 대답을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을까. 여전히 난 네가 참 존경스러워서 부러워. 언젠가 다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이 오길. 너에게 매일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무료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마무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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