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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Apr 24. 2024

혹시, 의미 없는 사과를 하고 계신가요?

난무하는 사과에 대한 멀티로컬의 끄적임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 강연을 듣게 되었고, 성편향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일깨움을 주는 것이 이 강의의 맹점이었지만, 강연자가 말하는 이야기 그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되는 강연이었다.

Ted talk
<성전환이 여성 삶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Paula Stone Williams

트랜스젠더인 강연자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인식되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표상 허점들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강연이다.

강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말은,

“You don’t have to apologize for being right.”

(의역: “자신이 올바른 것에 대해 굳이 사과할 필요 없어요.” )

위 말을 하며 강연자가 시사한 점은 다수의 여성이 자신이 옮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남성)의 틀린 점을 지적할 때 사과를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사과를 당연시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조금 다른 시야의 생각을 가져다주었는데, 물리적 여성/남성이라는 구분을 떠서 이 현상이 문화적 측면에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강연자가 말한 사례를 ‘나’에게 투영했을 때, 내가 바로 그 사소한 일에도 ‘사과’를 남발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자란 영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폐, 실수 그리고 잘못했을 때 사과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굳이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말을 꺼내기에 민망하거나, 강의에서 말한 상황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건 현상에 대해 분명히 동/서양 문화권에서는 차이가 있고, 시사점이나 해결 방안도 절대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현상을 문제로 삼느냐 아니냐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그 나라의 문화와 배경, 역사 등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커뮤니티의 구성원들과 상황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현상이다.

모호하게 동아시아라고 큰 범위로 말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문화에서 특히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어린 시절의 절반을 일본 문화권 아래에서 자라면서 일단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잠깐 있을 때, 예의가 바르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그건 내 신념에서 비롯된 예의가 아니라 습관성 사과였다는 걸 눈치챈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중 관련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한국에 정착한 지 온 지 얼마 안 됐을 이야기이다.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한국인 부모님들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돌 이후 일본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 초등학생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무지한 한국 문화와 조금은 어눌했지만 그래도 교포 2세들보단 뛰어난 한국어 말하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귀국 후 다니게 된 초등학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재외국민이었던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즉, 한국 문화를 잘 모르고, 한국어가 서투르지만 국적은 한국인인 아이들) 나라에서 재외국민을 위한 특별반이 부설로 형성된 일반 국립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귀국한 재외국민 아이들의 수가 워낙 적기도 해서 저학년/ 고학년을 뭉뚱그려 두 개의 반으로 개설이 되어있었고, 체육이나 미술과 같은 언어가 크게 쓰이지 않은 수업은 일반 한국 학생들의 반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이때 우린 일반 한국 학생들이 있는 반을 ‘협력반’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초등학교는 한 학년당 6개 정도의 반이 있었고, 협력반 학생들은 우리를 ‘귀국반’ 학생이라 불렀다. 각 반마다 귀국반 학생은 한 명 혹은 두 명씩 배정되어 생활 일정 시간 협력반에서 수업을 듣고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협력반 여학생들은 무리 지어 다니는 특징이 있었는데, 나를 끼워준 무리는 5-6명 정도 되는 반에서 기가 조금 센 여자아이들 몇 명이 포함된 무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 무리에서 마지막 남은 ‘깍두기’라는 한국 문화의 수혜자였을지도 모른다. 다들 나를 친구로 대해주고, 장난도 많이 치고 큰 탈 없이 재밌게 같이 잘 지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학교 건물과 운동장 사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큰 계단과 같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위로는 비나 강한 햇빛을 막을 수 있는 곡선 모양의 초록빛 반투명 플라스틱 지붕 같은 것도 있었다. 체육 시간에는 자유시간을 줄 때가 많아, 그곳에서 친구들과 모여 뜨거운 햇빛을 피해 수다를 떨거나 노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자아이들 무리에는 대게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는 여자아이가 한 명씩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무리에도 그 대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당시 중 단발보다 조금 긴 검정 생머리에 더운 여름에도 올 블랙의 옷을 입고 있었고, 한쪽 볼엔 항상 풍성 껌을 씹고 있었다. 체육 시간에 다 같이 큰 콘크리트 계단에서 놀다가, 우두머리인 그 친구가 실수로 내 발을 밟은 일이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동시에 “미안!!!”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내가 괜찮다고 덧붙여 말을 했다. 체육 시간 끝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다가 그 우두머리 친구가 궁금한 게 많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너는 왜 나한테 사과했어? 내가 너 발을 밟은 거잖아.”

잘못은 자신이 했는데, 내가 밟힘과 동시에 나도 같이 사과한 사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을 했고 잠시 생각한 뒤, 내가 사과를 한 이유에 대해 대답을 했다.

"네가 실수로 내 발을 밟은 건 맞지만, 내 발이 거기에 있었잖아. 내 발이 거기에 없었다면 네가 내 발을 밟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일본에서는 그래.”

이런 말을 했다. 체계적으로 앞뒤 말이 잘 맞도록 유창하게 구사한 한국어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더 어눌하고, 부족한 한국어로 말했을 테지만 난 분명 저 의미의 말을 그 친구에게 전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당시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그 자체였고, 지금은 한국,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 문화가 절묘하게 뒤섞인, 어느 문화에 완전하게 귀결이 되지 않은 다문화적 체계로 이루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위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더 재미난 것은 내가 중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배운 것이다. 중국은 말에 성조를 붙여 4가지의 성조를 사용해서 말을 하는데, 대부분 성조를 쓰다 보니 처음 중국인의 대화를 듣는 외국인의 귀에는 지금 싸우고 있는 중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강하게 들린다. 당시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21세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한 번에 볼 수 있던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재미난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 와일드하고, 다이내믹한 일들을 많이 겪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반에 중국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기’ 다. 여태 위에 길게 말한 것과는 전혀 반대의 말이다. 이건 정말 살기 위해 배운 것이란 점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만일 내가 잘못을 해도 일단 우기고 보라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되면 괜한 소송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일단 자국민에게만 우호적인 나라에서 외국인은 무얼 해도 잘못으로 치부되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말고, 우기고 봐라라는 생존법칙을 교민들을 통해 암암리에 배웠다. 일본에서 자랄 때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지만, 그때 배운 생존 법칙을 중국에서 생활하는 9년 동안 아주 잘 사용했으니, 기억은 안 나지만 나에게 야매 생존법을 알려준 이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사실 피해를 준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그건 당시 중국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봐도, 돕지 말고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중국인 선생님들 또한 같은 의견이셨고, 왜 중국에서 이 말이 퍼져나갔는지 하나씩 알러 주셨다. 어느 할머니가 전기 자전거 사고가 나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걸 본 마음씨 착한 시민 한 명이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의식을 찾았다. 이 이야기는 인류애가 철철 넘치는 훈훈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후 이야기가 이슈가 되었다. 할머니의 아들이 병원에 데려다준 시민을 뺑소니범으로 신고 및 고소를 했다. 좋은 일을 하고 범죄자로 몰린 시민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 과정 할머니는 자신을 도와준 시민을 뺑소니범이며 자신의 돈을 갈취하려 했다는 위증을 하여, 좋은 일을 한 시민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보도는 중국인들에게 남을 돕는 것에 대한 큰 거부감을 만들었고, 나 역시 주위 사람이 사고가 난 사람을 도우려 하면 도와주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도와주지 말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화나 사회적 성향 그리고 나라마다 문제시하는 관점은 모두 다르다. 이 점을 통해서, 위에 말한 Puala의 강연 속 현상은 문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동아시아만 바라봐도 이렇게나 다르단 사실은 오랜 기간 그 속에서 자란 나에게도 아직도 신선하고, 재미난 시사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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