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 아기가 없다.
자연스럽게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어쩔 수 없다” 주의였다.
어느 날, 생리가 꽤 일정한 편인데 소식이 없자 설마 했다.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아침에 해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해서 기다렸다. 혹시 모르니깐 해보는 거였다.
곧 연말이라 파티에 가야 하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도했다. 역시나 별 반응이 없다 했다.
별 반응 없는 이 순간이 익숙한 건 뭐지? 몇 년 전 몇 번 시도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항상 한 줄이었다.
역시나 임신일리가 없지라고 여기는 순간, 희미한 한 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임신이라니.
일어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얼떨떨했다. 내가 진짜 임신을 했다고?
첫 경험은 뭔가 어색하다. 이게 맞나 싶다.
내 첫 번째 임신도 그랬다. 그것도 10년 전에 원했던, 지금은 잃고 살던 사건이 이제야 터진 것이다. 살짝 기쁨의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니 이거 아닐 수도 있잖아. 혼란스러웠다.
아니야. 테스티기가 한 줄 더 보여주고 있잖아.
나 임신했어. 확신이 들자 눈물이 났다. 내가 임신을 하다니. 41살 지금.
엄마가 태몽을 꾼 사실이 기억났다. 그 말은 들을 때는 아무 관심 없어 내용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함께 있던 제부가 나에게 살 의향이 있냐고 농담까지 던졌지만 나와의 전혀 상관없는 일로 지났쳤던.
너무 신기했다. 엄마에게 빨리 알리고 싶었다. 태몽 뭐였냐고? 나 임신했다고.
동네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았다. 호주에 살아서 산부인과는 바로 갈 수 없었다.
수치가 마지막 생리 시작일과 맞지 않았다. 보통 이 날을 정확하게 보기 때문에 나는 4주가 넘어야 했다. 하지만 임신 호르몬 수치는 400.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다. 다음 주 호르몬 검사를 한번 더 해보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궁 외 임신이었기 때문에 이 호르몬 수치가 나왔다. 그 당시 나는 배란이 좀 많이 늦게 된 거라 믿었다.
노산의 경우 유산의 확률이 꽤 높다. 35세부터 노산이라 한다. 지금 평균 결혼 시기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비정상적 출산확률이 급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새 사람들이 젊게 살아도 염색채나 호르몬과 관련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 보다. 40세가 넘으면 더 위험하겠지.
의사는 내게 4명 중 한 명은 유산이라 했다.
어쨌든 나는 생에 첫 임신을 했다. 그 4명 중 3명에 포함될 거라 믿고 싶었다.
앞으로 건강을 잘 챙겨야지 다짐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단음식을 완전히 끊었다.
커피도 완벽히 끊었다. 모닝 루틴이었던 말차도 스탑. 의학적으로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마시지 않아도 만족스러웠다. 가공식품도 싫었다. 건강한 간식과 제철 과일이 좋았다. 남편이 끼니마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대령했다. 영양제도 꼼꼼히 하루도 안 빠지고 챙겼다.
노산이긴 하지만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찾아와 준 아이 같아 너무 감사했다.
삼십 대에는 육체적으로 젊었을지는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불안정하고 불규칙 적인 삶을 살았다.
경제적으로 불안했다.
오히려 사십 대가 되어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수면의 질을 중요시하며 먹는 것도 신경 썼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졌다. 가장 완벽한 시기에 아기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갑자기 임신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많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특히 달리기. 예전에는 잘 못 뛰어 빨리 걷기 위주였지만 임신하기 전 달리기를 30분 이상 해도 거뜬했다. 술도 거의 끊었다. 남편도 안 마시니 먹을 일이 없었다. 비타민 씨와 철분을 먹었다. 비타민 씨는 피부관리와 피로해소를 위한 것이었고 철분은 손톱이 약해지는 것 같아 수시로 먹기 시작했었다. 마지막 생리할 즈음, 갑자기 시댁에 큰 사고가 생겼다. 가게문을 닫고 결과적으로 나는 3주간의 휴가를 얻었다. 평생 외식업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쉴 때도 빠듯하게 여행을 다녔다. 이번처럼 특별히 한일 없이 몇 주 한가하게 쉬면서 잘 먹고 운동하면서 지낸 시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푹 쉬면서 친정엄마랑 같이 잘 때 엄마가 태몽을 꾼 것이다. 임신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니 기적이라 했다. 특히 친정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다. 내가 연락해도 바쁘다고 답장도 잘 안 하시던 분이 임신한 후부터 매일 먼저 나의 안부를 물으셨다. 너무 행복했다.
두 번째 피검사에서 호르몬 수치는 정상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잦은 출혈이 나를 걱정시켰다. 의사는 자궁이 변화하면서 생길 수 있는 현상이라 설명했다. 혹시 통증이 있거나 양이 많아지면 주의가 필요하다고 알려줬다. 많은 영상과 책을 보며 나는 지금 임신 몇 주 차일까 추즉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하면 임신 6주 차가 넘었는데 의사는 4주 차라고 했다. 분명 내 배 안에 콩알만 한 곰젤리가 자라고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아기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데 호주 의사인 지피는 초음파를 한 달 뒤에 보라고 권했다. 한국처럼 동네산부인과만 가도 볼 수 있는 초음파를 호주에서는 반드시 소견서를 가지고 2주 전 예약해야만 한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 증가하는 임신 호르몬에 안심하며 일을 가볍게 해 나갔다. 어느 날, 배가 평소보다 불편했다. 그전에도 살짝씩 간혈적으로 당기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녁 내내 배가 살살 아팠고 다음날 차 타고 이동할 때 덜컹하는 충격이 배에 너무 크게 왔다. 웃을 때도 배가 당겼다. 출혈도 안 나오다 다시 나왔다. 그러다가 빨간 피로 변하는 순간 패닉이 왔다.
그간 잦은 출혈이 있었지만 어두운 색이고 양이 적어 내심 안심했었다. 붉은색으로 변하는 순간 큰일 났다는 직감이 왔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이대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유산이면 어떡해? 빨리 병원 가서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가게 근처 브리즈번에 유명한 산부인과 병원, 응급실이 있었다. 혼자서 우버를 타고 10분 만에 도착했다.
너무 당황되고 무서웠다. 남편이 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더 서러웠다. 떨리는 손으로 접수했다. 임신 6주 차인데 갑자기 출혈이 있어 일하다고 왔다고 얘기했다. 직원들도 무언가 감지했는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급으로 가도 오래 기다릴 수 있다던 그 콧대 높은 호주의 산부인과는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한가했다. 병원의 문은 열려 있었고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초음파검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