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임신 그리고 유산

두 번째 이야기

by 세오나 셀레스트

파란 눈을 가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들어왔다. 호주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한다. 식당을 가도 백화점을 가도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직원들이 응대를 한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만났던 리셉션 직원들도 나이가 50세 이상 된 여성들 이였다. 갑자기 젊은 남자 의사, 아니 어린 친구가 들어오니 적지 않게 당황했다. 초음파실은 어둠침침하고 침대 정면에 빨간 숫자가 크게 쓰여 있는 전자시계가 붙어 있었다. 벽 모서리에는 커다란 화면이 내가 침대에 누워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다.

차가운 초음파 기기가 내 배를 묵직하게 누르며 천천히 질주하였다. 드디어 아기를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인지, 조금은 안정이 되었는지 의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지금 주수 정도에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던데요?"

의사는 답변을 우물쭈렸다. 뭔가 잘 안 보이는 눈치였다. 기계로 이것저것 기록하기도 하고 사이즈를 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둑한 화면을 들여다보며 나도 아기집이 어디 있는지 예상해 보았다.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아기가 잘 안 보이도록 작아도 아기집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호주 기계는 영 성능이 떨어지나?'

혼자 별 생각을 다 했다. 의사가 초음파 결과는 피검사랑 함께 알려준다고 하고 도망가듯이 쒹 나가버렸다.


어둑한 초음파실에서 2시간 정도 혼자 기다렸다. 벽면에 커다랗게 매달려있는 화면에서는 그대로 나의 검은 틱틱한 초음파 사진이 띄어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봐도 어디가 자궁이고 어디가 아기집인지 알 수 가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기도 하고 서성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에게든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유산한 것 같아. 나 응급실에 왔어."라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조산사가 들어왔다. 이 사람도 젊고 예뻤다. 전형적인 호주 여대생 같았다. 나에게 이전에 임신한 경험이 있는지 다른 질병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나이 들어 첫 임신을 했다고 하니 친근하게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임신초기라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인에게 임신 축하를 받는 건 생소했다. 결혼 10년 만에 임신을 했는데, 행복한 순간이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축하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혼자서 아기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아가씨 앞에서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간호사와 조산사들이 이것저것을 들고 분주하게 돌아왔다.

나를 유치원생 대하듯 신고 있던 까만 양말을 벗겨주고 발레스타킹 같은 하얀 압박 양말을 신겨줬다.

손등에 주삿바늘장치를 놓았다. 내일 수술할 때 필요한 거란다.

오늘 병원에서 자란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감이 안 잡혔다.

뭔가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감지하고 한국인 통역사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파란 눈을 가지 의사가 다시 왔다. 통역사는 전화로 쉽게 연결할 수 있었다.

80년 대 영화 속 여배우처럼 가는 목소리의 중년 여성이 통역을 맡았다.

의사가 하는 말을 건조하게 한국어로 변환해 주었다.

"자궁 외 임신입니다. 난소에 배아가 착상된 것 같습니다. 현재로는 100 %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내일 다시 한번 더 큰 기계로 초음파를 볼 거예요. 좁은 나팔관에서 터지면 굉장히 위험하니 안전하게 오늘 병원에 입원하시고 내일 아침 다시 한번 검사를 합시다. 내일 초음파 결과가 자궁 외 임신으로 확정되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작은 구명 세계를 뚫어서 하는 복강경 수술입니다. 배아가 착상된 부위를 찾아서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수술은 어렵지 않지만 그전에 출혈이 생기면 매우 위험합니다. 산모 생명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오늘 병원에서 주무세요."


나는 그저 우리 아가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도움을 받으려 왔는데 자칫하면 나의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믿기지 않았다.

임신이 이렇게 어렿고 위험한 거였나?


장사를 마무리하고 밤늦게 도착한 남편은 상황을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놀랠까 봐 문자로는 수술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자야 한다고 하니 불편한데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오잖다. 의사가 남편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남편은 침착한 사람이라 그런지 덤덤히 수긍하는 것 같았다.


자궁 외 임신은 영어로 “ectopic”이다. 호주에 있기 때문에 미리 임신 관련 영어를 공부했었다. 태반, 태아, 탯줄, 양수 같은 단어들 이였다. 살짝 어려운 제왕절개라는 단어도 영어유튜브에서 자주 언급되어서 그런지 금방 외우게 되었다. 하지만 자궁 외 임신이라는 영어단어는 세상 낯설었다. 유산은 흔할지 몰라도 자궁 외 임신은 100중 1명으로 걸린다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갔다. 2인실 이였다. 나는 창가에 있는 안쪽 침대로 배정받았다. 나보다 먼저 온 여자는 남자 보호자와 함께 있었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처럼 유산 때문에 누워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병원 입원 첫날밤, 아픈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스태프들이 나를 심각한 환자 대하듯 세심하게 챙겨주는 상황이 적응이 안 되었다. 나의 처참한 표정과 퉁퉁 부은 눈가가 위층에 있는 직원들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었나 보다.

나도 병원에서 잘 준비를 마쳤다. 새벽 3시부터는 물도, 음식도 금식이라 했다.

나에게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 두고 자기들끼리는 수술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내일 아침 일찍 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병실에서 까만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시골처럼 뜨문뜨문 빛나는 이스트 브리즈번의 야경이 보였다. 눈물이 났다. 아무래도 내일은 3주간의 짧은 임신 기간이 끝나는 날 같았다.

슬프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며 잠들었다.

작가의 이전글생에 첫 임신 그리고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