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첫 임신 그리고 유산

세 번째 이야기

by 세오나 셀레스트

병원에서 첫 밤을 보내고 생각보다 편안한 아침을 맞이했다.

임신하고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는 것이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든 1인이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게 하나의 인생목표였을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임신한 이후로 너무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임신 한몇 주, 갓 떠오른 햇살을 받으며 마시던 루이보스티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날도 새벽부터 일어나 기다렸지만 아침 8시가 지나서야 큰 기계(?)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어제 파란 눈을 가진 의사보다는 더 능숙한 여자 의사가 질 초음파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자궁 외 임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배아가 오른쪽 난소에 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위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수술을 해서 열어보고 제거한다고 했다.

마음 말고는 아픈 데가 없는데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돌아왔다. 병원 원칙인가 보다.

내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운동선수처럼 덩치가 큰 남자가 찾아왔다. 나를 침대 채 수술실로 옮겨주는 사람이었다.

평생 처음 이동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내달리는 천장을 볼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아도 눈물이 양쪽 귓가로 좔좔 흘러내렸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층 내려갔다. 민망하게도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이 훤히 보이는 밝은 곳이었다. 온도 또한 쌀쌀맞았다. 파란색 수술복을 입을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갔다. 나에게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와서 묻고 또 물었다. 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있냐고? 알레르기가 있냐고? 무슨 수술을 하는 줄 아냐고? 호주의 병원은 참 까다롭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안정시켜 주듯 다정한 말투였다.

수술실 앞에서 잠깐 기다릴 때 다리가 덜덜 떨렸다. 누군가가 방금 건조기에서 꺼낸듯한 따뜻한 담요로 나를 감싸주었다. 마치 뱃속의 아기가 다 괜찮다고 따뜻하게 안아 주는 느낌이었다. 아기를 떠나보내는 순간이 춥거나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수술실 안은 메디컬 드라마 세트장 같았다. 눈 부신 조명 아래로 옮겨 누웠다. 대여섯 명 되는 의료진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만약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던 나의 인생도 지금 여기가 마지막 일 수 있겠구나라고.

갑자기 왼쪽 손등이 뜅길정도록 강한 통증을 느꼈다. 어제부터 내 손등에 밝혀 있던 바늘에 마취약을 주입한 것 같았다. 산소마스크에서도 매운 가스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수술침대로 옮겨누은지 3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타고 온 침대를 타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 후 얼마간은 마취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물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병실에서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수술동안 가게에 가서 정리를 하고 있는다고 했다. 위험한 수술도 아니고 마취에서 깨는데 시간도 좀 걸린다고 들었단다. 그런데 수술실로 이동할 때 내가 우는 걸 본 후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병원에 와서도 남편 앞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수술받으러 가는 순간만큼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만난 의사가 병실로 방문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자궁 외 임신을 진단해 주었던 그의 파란 눈을 다시 보니 울컥 해졌다. 이제는 수술도 끝났고 아이도 없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추가로 내 장기가 뒤죽박죽 있었서 제자리로 돌리고 간에 있는 유착도 제거했다고 했다. 오른쪽 나팔관도 잘 제거했고 제거한 나팔관에 수정란이 있는지 한번 더 확인한다고 했다. 하루정도 경과를 보고 내일 퇴원하면 된다고 했다. 배꼽에는 손바닥만 한 사각형 밴드가 붙여 있었고 아랫배 팬티라인에는 삼각형 꼭짓점처럼 세 군데 칼집이 1cm 정도씩 나있었다. 그 위에는 투명 본드 같은 원형 반창고 발라져 있었다. 거울에 배를 비춰볼 때마다 수술흔적이 떡 하니 있는데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파업한 공장처럼 내 몸에는 아무 무런 힘도 들어가질 않을 뿐이었다.

거의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수술 후에도 입맛이 없었다. 저녁에 병원에서 나오는 미트소스 파스타를 조금 먹었다. 호주라고 하지만 병원에서 이런 음식을 먹게 될 줄이야. 간호사가 살뜰하게 챙겨주는 진통제도 먹었다. 룸메이트는 퇴원하고 없었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콩알만 하더라도, 함께 한 시간이 3주밖에 안됬더라도 내 뱃속에 있던 아기가 이제는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퇴원했다.


며칠 지났다.

만약 금요일 고민만 하다가 끝내 병원을 찾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봤다.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처럼 가볍게 병원에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무런 출혈도, 통증도 없었기에 며칠을 계속 불안해하면서 시간만 보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병원에서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밤늦게 터졌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만약 더 빨리 초음파 검사를 했다면 수술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오픈한 덕분(?)에 장기 위치 정리와 간의 유착제거까지 무료로 받은 셈이었다.

이번일로 눈 한번 질끈 깜으면 끝날 수도 있는 삶,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각성했다.

뱃속의 아기를 위해 예쁘고 좋은 음식만 먹으려고 했을 때, 이제껏 나에게는 하찮은 것만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을 위해서는 예쁜 그릇에 담고 음료 한잔에도 신중하게 레몬을 올렸다. 정작 나 자신에게는 자투리 같은 것만 스텐 믹싱볼에 담아 주었다. 바쁠 때는 주방에서 쭈글리고 앉아서 먹기도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 쓰며 나이가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잃고 살았다. 나의 생에 첫 임신은 바로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을 알려준 선물이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새콤한 드레싱이 부어진 초록 샐러드를 먹을 때였다. 나의 하얀 접시 주변으로 까만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짓눌려 죽였다. 6주 된 배아는 참깨만큼 작다던데 나를 떠난 아가도 이 날파리만큼 작았겠지. 내 손가락 끝에 남은 검은 자국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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