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WA코리아 이정은 CD, 광고 카피라이팅의 트렌드
최근 몇 년간 광고 카피라이팅 환경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확산, 숏폼 콘텐츠의 부상, 특히 AI 기술의 발전은 문장의 형태와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거 한 편의 TV 광고나 인쇄 매체 중심으로 카피가 만들어지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수십 개의 플랫폼과 채널에 맞춘 다중 버전 카피 배리에이션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런 시대, 우리는 어떤 무기를 장착하고 카피라이팅을 해야 할까?
요즘 사람들의 평균 집중 시간은 약 8초라고 한다. 특히 광고에서는 첫 3초가 중요하다는 게 오랜 정설. 숏폼이나 릴스와 같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은 몇 초만에 스크롤을 넘기고, 몇 단어만으로 판단되곤 하니 3 초가 아니라 ‘1초 시대’가 된 셈이다. 카피를 귀로 듣거나 글로 읽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소화하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수많은 광고의 키카피들이 ‘트렌디한 & 핀터레스트틱한 디자인’을 입기 시작했다. 한때는 캘리그라피로 써야만 세련돼 보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카피의 이미지화는 소비자들의 빠른 이해와 즉각적 반응을 위함이다. 미감이 높은 단어의 조합은 자연스레 읽고 싶게 만든다. 브랜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이미지가 한눈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아트디렉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 감독만의 영역이 아니다. 카피라이터 역시 스스로 카피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본인의 의도와 브랜드의 요구에 맞게 문장뿐 아니라 아웃풋의 형태까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와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시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카피는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시선을 머물게 하고, 결국 세일즈까지 이어지는 힘을 가져야 한다. 한눈에 의미와 이미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카피, 눈으로 잘 ‘캡처되는 카피’를 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다.
FOOH가 한바탕 SNS를 휩쓸었다. 날이 갈수록 가짜 뉴스는 넘쳐나고, AI는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가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겼다. 소비자들은 그게 가짜라는 것을 이제 너무나 잘 알지만 그 가짜를 ‘있어 보이게’ 구현해 냈다는 것에 좋아요를 누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오히려 팩트다운 팩트가 힘을 발휘한다. 진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찐팩트’가 담긴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진짜’를 향해 움직인다. 일례로 2024~2025년 TBWA KOREA에서 집행한 가다실9 광고 영상은 일상 속 자연스러운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카피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다. 팩트 팍! 팩트 팍! 팩트 팍! 물론 의약품 광고이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신문 기사나 논문에서 볼 법한 문장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감정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근거로만 설득한다. 소비자들은 이걸 지루하게 여겼을까? 이 광고는 올해 Effie Awards Korea(‘광고 효과·결과’를 평가하는 광고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즉, 팩트를 카피로 직접 써낸 것이 효과로 이어졌다는 증거다. 여담을 하나 덧붙이면 광고하는 사람들이 가장 광고에 혹한다는 말이 있다. 최근 2026 가다실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 담당 카피라이터가 스스로한테 광고 당해서 가다실 맞으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내년에 어떤 ‘팩트 공격 카피’가 태어날까 기대된다. 잘 쓰인 팩트 카피의 힘은 확실하다.
몇 년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던 트로트의 전성시대. 시즌을 거듭하며 n차까지 이어졌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이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고, 대신 발라드의 시대가 찾아왔다. 사람들에겐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감성 자극도 필요했던 것이다. 광고에 쓰이는 카피도 마찬가지 아닐까. 팝하고 센 문장, 말 장난, 라임 맞추기 같은 카피들은 여전히 광고계의 ‘베스트셀러’ 유형이다. 효율과 속도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카피들은 제품이 잘 팔리도록 돕는다. 말 그대로 ‘베스트 셀러(seller)’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카피는 따로 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매일 새로워지지만, 좋은 카피는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감정의 결을 담아 브랜드의 진정성과 철학을 보여주는 ‘밀도 있는 카피’. 마치 언제 들어도 좋은 The Beatles나 Queen의 노래처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스테디셀러’다. 이런 카피가 담긴 광고를 떠올려보자. 이젠 고전이 된 SKT 광고, 대한항공 광고, 그리고 최근에는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컴투스 프로야구’, 진지한 팩트를 무게감 있는 카피로 담아내며,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기업의 철학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한화의 ‘지속 가능한 내일’ 시리즈가 있다. 이런 광고들은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모든 문장을 외우진 못해도, 한 번만 봐도 마음에 잔상이 남는다. 기업의 방향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