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위기의 사춘기
8. 추억 속으로
나는 그제야 선율 이를 위해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학교에 보내기만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형편에 학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드니까 주말에 엄마 가게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어 보자.” 나는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으니 선율 이를 데리고 나왔다. 선율이 도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책가방을 챙겨서 선뜻 가게로 나왔다. 수학 문제를 풀어봤지만 둘 다 당황해서 주말 동안에 10시간씩 수학을 붙잡고 있었지만 암담했다. 수포자였던 내 능력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동네 수학 학원에 보냈다.
문득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가 끝나면 공부를 해야 하는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은 계엄령 때 파산을 했고, 이후부터 생계를 위해 우리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고 안 계시는 동안 우리 형제가 알아서 생활을 했다. 공부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생활 습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나는 초등 3학년때부터 밥을 짓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냄비에 쌀을 씻어 석유곤로에 올려놓고 내가 의도하는 대로 불조절만 하면 누룽지를 하나도 생기지 않게 만들 수 있었고, 누룽지의 정도까지 컨트롤이 가능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장금이 될 수도 있을 만큼의 굉장한 능력이다. 내가 커피 로스팅을 잘하는 것도 타고난 재능임에 분명하다. 비록 쫄딱 망해서 생활이 어려웠지만 부모님이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덕분에 나는 순수하게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학교생활을 해야만 하는 막연한 상황에서 혼자 고민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나는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 채 그냥 습관처럼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2학기에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집을 푸는 게 다였지만 그 덕분에 나는 처음 반에서 13등을 했다. 58명 중에서 늘 55등을 왔다 갔다 했는데 갑자기 성적이 껑충 뛰어오르니 부모님도 담임선생님도 깜짝 놀랐다. 그 후로 25등 내외를 유지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도 그냥 진학을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면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야간 고등학교에 가기 싫어서 기를 쓰고 공부해서 입문계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