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제국을 일구다
* 왜 캄보디아 역사를 알아야 할까?
캄보디아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찬란했던 크메르 제국이 남긴 앙코르와트부터,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들까지, 캄보디아 역사는 한 나라의 정체성과 오늘날의 모습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우리가 캄보디아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1997년 재수교 이후 꾸준히 교류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왔고, 2024년에는 마침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캄보디아는 단순한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를 넘어, 우리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현재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이 글을 통해 캄보디아의 과거를 들여보고, 우리가 왜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대 캄보디아의 시작 : 푸난과 첸라 왕국
캄보디아의 역사는 기원후 1세기 무렵 메콩강 하류 지역에 위치했던 푸난(Funan/ ហ៊្វូណន) 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맹 형태로 발달한 푸난은 현 베트남 옥에오(Óc Eo) 지역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 교역의 중요한 중계지로 번성했다. 이 시기 푸난은 인도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아 힌두교와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3세기 초에는 영토가 남쪽으로는 말레이반도, 서쪽으로는 현 미얀마 영토까지 확장될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5세기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푸난은 결국 첸라(Chenla/Zhenla/ចេនឡា) 왕국에 의해 멸망했다. 첸라는 푸난 왕국 시절 도시국가 중 하나로 시작해, 7세기에 푸난을 병합하고 독립왕국으로 성장했다. 첸라왕국은 메콩강 중앙 유역에서 시작되었으며, 푸난 왕국을 계승해 도시국가의 연맹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1세(Jayavarman I, ជ័យវរ្ម័នទី១) 사후 내륙 첸라(육진랍)와 해안 첸라(수진랍)으로 분열되었고, 해안 첸라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마타람 왕국에 복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마타람의 속국이 된 해안 첸라의 왕으로 세워진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 ជ័យវរ្ម័នទី២)는 세력을 키워 802년 분열된 첸라 왕국을 통일하며 크메르(앙코르) 왕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크메르 제국의 위대한 황금기
802년, 자야바르만 2세는 첸라 왕국을 통일함과 동시에 자바 섬의 마타람 왕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본인을 데바라자(Devaraja ទេវរាជ), 즉 신왕(神王)으로 선포하였다. 이후 자야바르만 2세는 왕국의 수도를 *마헨드라 파르바타에서 *하리하랄라야로 천도하며 크메르 제국으로 향하는 기틀을 다졌다.
* 마헨드라 파르바타 : (現)캄보디아 시엠리엡 주 프놈 쿨렌 산악 인근 지역이다.
* 하리하랄라야 : (現)캄보디아 시엠리엡 주 룰로오스 지역에 위치한다.
이후 제국은 수리야바르만 2세(Suryavarman II, ព្រះបាទសូរ្យវរ្ម័នទី២)와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ជ័យវរ្ម័នទី៧)를 거치며 크게 발전했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1113년 즉위 직후부터 정복활동에 매진하여 *참파 왕국의 수도 비자야를 함락시키고, 베트남의 *리 왕조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등 당대 동남아시아 최강국의 위치를 굳건히 지켰다. 이후 1116년에는 중국의 북송에 사신을 보내 동남아시아의 군주로 인정받으며 대내외적으로 유일한 패권국이 되었다. 특히 그의 치세에 캄보디아의 국가적 상징이자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건축 유적인 *앙코르와트(Ankor Wat/ប្រាសាទ អង្គរវត្ត)가 지어졌다.
* 참파 왕국 : 서기 192년부터 1832년까지 약 1600여 년간 (現)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말레이계 민족인 참족의 나라이다.
* 리 왕조 : 베트남의 리 왕조는 1010년 리 타이 또(Lý Thái Tổ, 李太祖)에 의해 건국되었다. 리 왕조 시기, 수도를 호아 르(Hoa Lư, 華閭)에서 현재의 하노이(Hà Nội)인 탕롱(Thăng Long, 昇龍)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국호를 대월(Đại Việt, 大越)로 명명하며 국가를 발전시켰고,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장기 왕조로 자리매김하였다.
* 앙코르와트 : 앙코르와트(Angkor Wat ប្រសាទអង្គរវត្ត)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건축 유적이며, 크메르어로 ‘사원의 도읍’ 이란 뜻이다. 캄보디아의 국가적인 상징으로 1863년에 제정된 첫 번째 국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기에 들어갈 정도로 캄보디아 국민의 자랑거리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 참파 왕국의 침공으로 수도가 점령당하고 국왕이 시해당하는 치욕을 겪었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집권하며 복수에 성공했다. 그는 참파 왕국을 크메르 제국의 속국으로 만들었고, 영토를 확장하여 캄보디아 역사상 최대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이 시기 '크메르의 미소'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과 앙코르 톰 등이 건설되며 제국의 국력과 문화는 최정점에 달했다.
제국의 쇠퇴와 암흑기의 시작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 사후 크메르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야바르만 8세 시기, 원나라의 침공과 타이족의 남하로 인한 수코타이 왕국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후 1431년 아유타야 왕국의 앙코르 침공은 제국의 쇠퇴를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의 정치적 중심지는 메콩강 하류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후 캄보디아는 15세기 초부터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될 때까지의 긴 암흑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 캄보디아의 사료는 매우 희귀하며, 대부분 외부의 기록에 의해 해석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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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타 모토오. 장원철(옮김). *동남아시아 史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22).
* David Chandler. (2008). *A HISTORY OF CAMBO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