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의 유산: 캄보디아를 지배하는 '안정'의 가치

by 진별

킬링필드의 유산 : 캄보디아를 지배하는 '안정'의 가치


나는 캄보디아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한번씩 캄보디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캄보디아는 독재국가라는데 왜 그런 나라를 공부해?" 또는 "국민들이 독재자를 왜 그렇게 지지하는 거야?"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캄보디아를 단순 '독재국가'라는 틀에 가두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느껴왔다. 물론 이러한 비판과 주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를 공부해온 나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현실을 보았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 그리고 국민의 선택


캄보디아의 정치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과 달리, 현 집권 여당인 캄보디아국민당(CPP)이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가 강조했던 동남아시아 정치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리콴유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동남아시아의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에 항상 최적의 모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캄보디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75년 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즈 정권은 '킬링필드'라는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시기 캄보디아의 지식인, 종교인, 도시 거주민은 무차별 학살당했고, 강제 노동을 통해 수많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이처럼 극심한 혼란과 폭력을 경험한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정치적 안정은 그 어떤 가치보다 더욱 절실한 가치였다. 바로 그 시기, 캄푸치아인민혁명당(KPRP), 즉 현 캄보디아국민당(CPP)의 전신이 크메르루즈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수립했다. 이로써 국민들은 정치적 안정을 가져다준 세력으로서 CPP를 인식하게 되었다.


상단 좌측 부터 1. 민주캄푸치아 2.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3. 캄보디아국 4. UNTAC 5. 캄보디아왕국
캄보디아 현대사는 1975년 크메르 루즈 집권이후 1993년 캄보디아 제 2왕국이 설립되기까지 엄청난 정치적 혼란을 겪어왔다.


'독재'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가시적인 경제 발전과 안정을 통해 삶의 개선을 체감했고, 이는 CPP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이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캄보디아의 정치는 국민들이 생존과 발전을 위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안정'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자유'를 희생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 방문하면 자주 볼 수 있는 អរគុណ សន្ទិភាព(Arkun Santepheap)이라는 '평화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는 이러한 국민들의 안정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강렬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អរគុណ សន្ទិភាព(Arkun Santepheap) '평화에 감사합니다'


'권위주의'라는 역설의 정치


물론 캄보디아의 정치가 순전히 국민적 지지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는 '권위주의(authorianism)'라는 독특한 형태로 권력을 유지한다. 이는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면서도, 야당을 탄압하여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이중적인 방식이다. 그예로 2017년 제1야당이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해산시키고 2018년 총선에서 거의 모든 의석을 차지한 사건은 이러한 권위주의 체제의 단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최근에는 30년 넘게 장기 집권한 훈센 전 총리가 아들인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며 권력 세습을 공고히 하는 모습 또한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 뒤에 숨겨진 권위주의의 실체를 여전히 들어낸다.


결론 :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따라서 캄보디아를 단순히 '독재'라는 낡은 이분법적 사고로 설명하는 것은 그 나라의 복잡한 정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는 캄보디아를 마냥 비난하기보단, 캄보디아만의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구조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를 통해 캄보디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더욱 깊고 풍부해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 정연식. (2015). 2013년 캄보디아 총선: 선거권위주의에 대한 도전. 동남아시아연구, 25(1), 85-119.

* 정연식. (2018). 캄보디아의 2018년 총선: 캄보디아구국당 해산과 퇴행적 선거권위주의. 동남아시아연구, 28(4), 197-221.

* 외교부 주캄보디아대사관. (2022). 캄보디아 개황(2022.8).

* 정재완, 김소은. (2023). 캄보디아 2023년 총선 결과와 정치·경제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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