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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Jul 01. 2022

만화작가의 훌쩍 떠난 우리나라 여행기

강릉

 기차여행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대전역에 갔더니 강원도행 열차는 시간을 알고 가지 않는 이상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친절한 역무원의 관광 안내까지 보태 들었으며 그녀는  차라리 버스가 나을 거란다.(기차 역무원들은 예전에 비해 많이 친절해졌다.) 아무리 훌쩍 떠나는 여행이라지만 목적지와 교통시간도 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은 무모하다.  대전 복합터미널로 가서 가장 빠른 강릉행 버스를 끊었다. 벌서 점심시간이 되어 터미널 분식집에서 김밥과 어묵을 먹는다. 김밥은 은박지에 싸놓은 걸 주시고 어묵은 노점상의 어묵보다 딱딱하고 밀가루떡을 먹는 느낌이다. 분식점 사장님의 입이 걸다.

 "어느 노인네가 김치는 안주나? 그러는 거야. 달라고 해요. 그럼 주거든요. 이랬지"

 누군가에게 푸념 중이다.


 승객은 7명 남짓, 버스회사가 이래서 남을까 싶다. 모자로 보이는 아들과 아주머니는 텅텅 빈 버스에 한갓지게 떨어져 앉았다.  내 뒷자리에 군인이 앉았는데  더 뒤에 앉은  한 군인이 이 군인에게 휴대폰 빌려 자기 부대에 귀대 보고를 한다. 아들이 이제 대학 입학했으니 군대 갈 건데 남의 일 같지 않다. 알싸한 기분이다. 갔다 온 분들. 지금 있는 분들. 가야 할 분들 모두 고맙고 안쓰럽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 통일이 돼야지.

 

 버스 안에서 아메리카노와 에이스를 사 와서 책을 보며 먹는다. 무거울까 봐 책을 많이 가져 오지 못 했는데 버스 안에서 다 읽어 춘천 이마트에서 미니북 한 권을 사게 된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늘 비슷하고 평범하다. 하지만 스누피를 닮은 구름이 걸린 청명한 하늘도  아직은 봄빛 덜 받은 산도 예쁘다.


 강릉에 내려 관광안내소의 설명에 따라 주문진항에 도착한다. 강릉, 경포대, 정동진, 주문진 하루에 다 못 본단다. 그래도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좋겠지 하는 사심으로 주문진에 먼저 들른다. 유리병 같이 생긴 등불을 주렁주렁 매단 오징어잡이 배들이 항구 선박 주차장에서 쉬고 있다. 배에도 각기 번호판이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갈매기들이 햇빛 받아 윤슬이 가득한 바다에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주문진 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바닷물은 어온 수조 안에는 곧 횟감이 될 생선들이 좁은 공간에서 팔딱거린다. 돌멩이를 모아 놓은 것 같은 골뱅이들이 쌓여있고 새우튀김도 푸짐히 쌓여 단체 관광객들을 부른다. 멜빵형 점프슈트를 입고 출어 다녀온 어부 아저씨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계신다. 다음을 위한 작업 인가 보다.

 심해 괴물 대왕 오징어 같이 생긴 주문진항 석조 상징물에 1930년대 주문진항 모습이 흑백으로 붙어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여학생들에게 길을 물으며 어디가 볼만 하냐니까 영 곤란한 눈치다.

"항에 가면 배 있고 물고기가 있고..."

옆의 여학생이 어디 지명을 얘기해줘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경이로운 곳이라도 일상이 되면 시시하게 느껴질 거다. 자신이 사는 곳의 어디를 추천해주고 싶은가요? 이것도 개개인의 성격 차이일수도 있겠다.

  다시 시장 쪽으로 들어가 본다. 이번엔 생선을 많이 구워 놓고 호객 행위하는 골목이다. 처음에 회를 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으로 왔지만 아직은 밥시간도 아니고 소심하게 사진만 찍어본다. 옆구리에 알이 터져 나오는 도루묵구이 인상적이다. 회와 생선구이는 포기하고 오징어만 한 축 산다.


 주문진 항에는 숙소도 마땅찮고 해서 서둘러 경포대에 도착했다. 중간에 주문진의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길을 반대로 알려주셔서 버스 종점까지 갔다 왔지만 아주머니는

"거 뭐더라 신사임당...."

"오죽헌이요?"

"아 맞다. 거기서 000번으로 갈아타면 돼요."

그 말만 믿고 반대편 종점까지 다녀온 터였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키가 크고 곧은 해송들이 20년 전에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거대한 공룡알 탄생석이 반으로 쩍 갈라져 전시되어 있었다. 경포대 해수욕장을 걷다 콘도형 모텔 한 곳에 들어간다. 들어가며 회 잘하는 곳이 있냐고 묻는다.

"왜 언니 혼자 먹으려고?"

"왜요? 많아서요"

"아니 혼자 안 먹으려고들 하잖아"

"그럼 포장은 해주나요?"

"아 포장은 해주지. 포장해 가지고 와서 베란다에서 먹어" 이러신다.

혼자 여행을 한다면 무슨 일이 있냐고 이상한 눈길로 본다. 심지어 혼자 묵는다면 누가 오시냐고 묻기도 한다. 혼자 모텔에 묵는다면 이상한 생각을 품고 온 사연 많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나보다. 모텔을 나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회를 먹거나 포장할만한 곳이 없다. 하릴없이 편의점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사다 먹는데 생각해보니 아침에도 김밥을 먹었다. 여행자가 지역 맛집을 도는 게 아니라 김밥만 내리 두 끼를 먹다니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베란다에는 파라솔과 나무 식탁이 있었지만 도저히 회를 먹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분명 콘도형이라 쓰여 있었지만 취사도구는 하나도 없었다.


 주문진항에서 사 온 오징어를 굽지도 않고 씹으며 맥주캔을 딴다. 밤바다를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뒤채는 하얀 포말을 홀린 듯 본다. 경포해수욕장의 뒤편 경포호는 비라도 오렸는지 잔잔하지 않다. 마치 100도씨의 물처럼 파르르 끓고 있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인다. 파도치는 호수는 바다보다 무섭다. 경포호 너머로 불야성의 관광지가 보인다.

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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